평범한 우리들의 고민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상담군


이제까지 특성이론을 중심으로 한 진로찾기에 대해서 쭉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걱정이 생기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본인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죠. 개인의 진로특성과 직업을 짝지어주는 이론대로라면 돌출된 흥미와 적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청소년들은 직업선택에 기준삼을 만한 지표가 없는 것입니다. 아까 소개한 홀랜드 검사를 예로 들면 변별성이 높지 않고 여러 가지 유형들이 비슷비슷한 점수로 나타나는 경우겠죠.


우리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고만고만한 모범생들만 기른다고 비판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키우지 못하고 닭장속의 닭처럼 훈육시킨다며 분개하죠.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출판시장이나 미디어에서 특이한 사람들의 성공사례가 부각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여요.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평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요. 서점에 가보세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자신은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길을 개척했다며 무엇이든 도전하라고 부추기잖아요. 그리고 그런 책이 더 재미가 있죠. 아주 특출나지는 않지만 평범하고 성실한 ‘범생이’의 인생은 각색해서 글로 만들면 아무래도 싱거울 테니까요.


지금 진로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미래설계의 한 발은 뗀 셈입니다. 진로정체감 이론에서는 이런 상태를 ‘진로정체감 유예’라고 합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찾아보는 단계를 말하는 거죠. 청소년이 이런 단계에 있는건 자연스럽고 건강한 상태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미래직업을 고른 후 그 분야의 교육과 훈련에 매진하는 것이죠. 이를 ‘진로정체감 유실’이라고 합니다. 탐색하려는 시도도, 특정 분야에 전념하지도 않는 상태는 ‘진로정체감 혼미’라고 부르구요.


자신의 진로정체감이 유예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종이를 하나 준비해 보세요. 갖고 싶은 직업을 찾는 건 어렵잖아요. 그러면 갖기 싫은 직업을 적어 보세요. 그러면 적히지 않는 나머지 직업들이 내가 해도 나쁠 건 없는 것들이겠죠. 사실 내가 할 만한 일 중에서 환경적 여건이 맞는 걸 찾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에요. 그 직업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보수는 얼만지, 복지는 어떤지, 직업수명은 충분히 긴지... 각각의 직업조건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의외로 끌리는 걸 찾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인생의 많은 기회들은 우연히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예를 하나 들게요. 여기 그냥 심리학과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특정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은 없었죠. 근데 어느 날 선배가 심리학 실험실에서 연구보조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어요. 돈을 벌고 싶어 일을 하다 보니 인간 마음을 더 탐구하는 재미를 실험실에서 느꼈어요. 결국 대학원에 가서 연구원의 삶을 살게 되죠. 어떤가요?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게 됐죠?


진로학자 크럼볼츠(Krumboltz)는 이처럼 우연한 기회가 진로를 이끌어주는 상황을 ‘계획된 우연’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위의 사례가 되게 특이한 것 같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우연한 사건들을 계기로 삼아 직업을 가져요. 계획을 가지고 그 길을 그대로 밟아 가면 좋지만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그렇게 안 되거든요.


‘계획된 우연’ 이론에서 자신의 진로를 잘 개척하려면 필요한 덕목이 있어요. 이 학자는 다섯 가지를 말했지만 그걸 다 열거하면 너무 많으니까 그 중에 둘만 이야기할게요. 하나는 ‘호기심’이에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우연한 기회가 나타났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가겠죠.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디딤돌 삼아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죠. 또 하나는 ‘위험감수’에요. 쉽게 말하면 용기를 가지란 말이에요. 우연한 기회라는게 실제로 나타나면 두려울 수도 있잖아요.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면 용감해야 하죠.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기만의 길을 찾아서 행복하게 잘 삽니다. 진로개척이라는 것,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게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지만 때를 기다리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호기심과 용기를 가지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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