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문제도 심리문제입니다

진로와 자기효능감

by 상담군


진로상담 고객 중에는 상담실에 찾아와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해본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성향에 맞는 직업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죠. 그러면 알았다고는 하지만 태도는 시큰둥합니다.


직업세계에 관해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직업카드 활동’을 시킵니다. 직업카드 구성은 이렇습니다. 카드 한 장이 하나의 직업이 소개되어 있어요. 앞면에는 직업의 이름과 간단한 일러스트가, 뒷면에는 그 직업에 관한 개괄적 소개와 관련 대학 학과, 필요한 자격과 기술 등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 카드가 90장이 한 묶음입니다. 상담실에 찾아온 학생들은 이 카드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관심한 것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진로 성향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직업이 많다는 것도 느끼구요.


그런데 시큰둥한 태도의 내담학생들에게 직업카드 활동을 시키면 ‘좋아하는 직업’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고, 90장의 카드를 싫어하는 일과 무관심한 일로 구분합니다.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라고 하면 ‘다 별로 땡기지가 않아요’라고 말하죠. 아무 단서가 없으니 상의할 것도 없고 답답할 노릇이죠. 그렇다고 혼낼 일도 아니구요.


위에서 진로정체감 이론을 할 때 탐색도 전념도 할 의지가 없는 청소년을 ‘진로정체감 혼미’로 분류한다고 했죠?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위에서 제가 진로상담은 심리상담을 포함하므로 더 어렵다고 했었죠. 그러니까 이런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야 할 마음속의 장애물이 있는 겁니다. 자기를 이해하거나, 직업세계를 탐구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거죠.


진로학자들은 이를 ‘진로자기효능감’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효능감은 자기 능력에 관한 신뢰입니다. 진로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진로개척의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낮은 사람은 자신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실패를 예상하기 때문에 탐색도 전념도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고민하지 않으면 실패의 고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진로상담을 할 때도 시들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면 자기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로학자들은 ‘성공경험’과 ‘대리경험’을 말합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도전해서 결실을 맺어보구요. 내 주변에 비슷한 연령과 능력의 친구가 무언가를 이뤄내는 모습을 관찰하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집니다. 그러려면 제가 위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던 주장 있죠? 당장 내 진로와 상관없어 보여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구요. 다른 능력처럼 자신감도 연습으로 길러지니까요.


어릴 때를 기억해 보세요. 아빠, 동네 형, 언니들이 자기 일을 척척 처리하는 걸 보면 부럽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빠르게 달리고, 높이 뛰고, 복잡한 계산도 하고, 정교한 그림도 그리는 모습이요. ‘어린 나’는 아무리 애써도 할 수 없었죠. 근데 몸과 머리가 자라면서 어떠던가요. 인생 선배들이 했던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잖아요.


물론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과업들도 존재해요. 그러나 대부분의 과제들은 연습하고 훈련하면 누구나 가능해요. 진짜 재미있는게 하나도 없다구요? 그럴 수 있어요. 근데 흥미가 없는 분야도 일단 참고 해보다가 무언가 성취하는 게 있으면 그때부터 보람을 느끼고 즐거움도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 진로문제가 감당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내 마음부터 살펴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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