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을 통해 완성됩니다
제가 진로의식도 키처럼 자란다고 앞에서 언급했었던 것 기억하시죠? 환상기의 아동은 무조건 화려하고 지위가 높은 직업을 자기 미래직업으로 꿈꿉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학령기가 올라가면서 점점 자신의 현실적 성취에 맞춰서 지위를 정해나가죠. 그래서 진로발달은 자신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지워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현실과의 타협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인간이 헌법 아래 모두가 평등하듯, 귀한 직업과 천한 직업을 분리하지 말자는 말이에요. 도덕적으로 옳은 말이죠. 직업의 귀천을 분리하면 결국 그건 인간 차별이 될 테니까요.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떳떳하게 땀흘려 돈을 버는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해요.
그런데 모든 직업은 암묵적인 지위가 존재합니다. 의사, 변호사와 같은 직업은 오랜 시간 많은 양의 공부량을 소화해야만 취득할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나 자격시험에서 극소수만 선발되죠. 우리가 보통 ‘고시’라고 불리는 시험도 마찬가지에요. 합격하기 어렵고 대신 댓가가 큽니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직급이 다 있죠. 직급이 높으면 대우도 좋고, 권한도 많고, 보수도 많습니다. 이처럼 직업에 지위가 있다는 것도 엄밀한 사실입니다.
사회학 이론 중에서 ‘기능론’이라는게 있습니다. 지위가 나뉘는 게 필수불가결하다는 이론이에요.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으니,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한과 높은 지위를 가져야 모든 구성원에게 이익이라는 거에요. 기능론적 모델에서는 똑똑한 사람이 경쟁에서 승리하여 권한과 책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죠. 능력 있는 사람이 내린 결정은 그만큼 결과가 좋을 테니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덕이 되겠죠. 그리고 기여를 한 만큼 두둑한 댓가를 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이론체계 안에서는 지위의 높낮이가 존재하는게 당연합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기능론에 입각해 설계되어 있죠.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그렇구요.
하지만 누구나 높은 지위에 다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타협을 하게 되죠. 보수와 권한, 명예를 추구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그 위치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고드프레슨(Gottfredson)에 따르면 인간은 진로발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포기하게 됩니다. 같은 직렬의 직업들을 지위순으로 한 줄로 세웠다고 가정해 보죠. 각 개인은 그 중에서 성취하기 어렵고 대우가 좋은(높은) 직업에 다다르려고 하고, 취직이 쉽지만 대우가 나쁜(낮은) 직업을 피하려고 합니다. 성취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는 자기 포부를 낮춥니다. 이걸 하지 못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고통스럽기만 할 뿐 진로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현재 진로고민 때문에 힘들다면 한번 여러분이 높은 지위에 대한 미련 때문에 타협을 피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이상과 현실의 조화는 진로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