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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14. 2023

낭만적인 피렌체에 마음을 두고 온 하루

넌 감동이었어.

대학생 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때는 내가 대학교 2학년 즈음이었는데 그때는 한참 시험기간이었다.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을 때, 시험 기간이었음에도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자고 했다. 당시 냉정과 열정사이는 에쿠니 카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가 각각 남자와 여자 입장에서 서술한 소설이 출판되었었고 나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내 기억에 평일임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 주가 끝나자 영화는 막을 내렸었다. 그래서 시험 끝나고 영화 보러 가겠다던 친구들은 아무도 그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었다.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영화를 선택한 보람이 있었더랬다. 시험 대신 영화를 선택했으니 당시 내 학점은 별로였겠지만 지금은 학점은 기억 안 나고 영화 봤던 그날은 기억나는 걸 보니 의미 있는 일탈이었음이 분명하다

 

일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배경은 피렌체였다. 영화 음악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과 준세이와 아오이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한참 후에도 영화를 떠올리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 영화 속에서 아오이가 준세이에게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는 많은 계단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라가면 그 사랑이 영원히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때부터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꼭 가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두오모 성당에 간다. 아이들도 피렌체에 대해 조사해 볼 때 두오모 성당은 꼭 올라가 보라는 말이 많았다며 기대한다. 자식들. 계단 엄청 많을 텐데,,


오전에는 미리 예약했던 우피치 미술관에 다녀왔다. 이제 미술관을 여러 곳 다니다 보니 살짝 지루해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갔던 미술관 중에 가장 비싼 입장료였다. 또 내가 미처 우리의 피로도를 생각하지 못한 탓에 아침 일찍으로 예약해 두어 오전에 가야만 했다. 피곤한 몸이지만 다들 가볍게 유명한 작품만 보고 오자며 우피치를 다녀왔다. 우피치를 가는 길에는 베키오 다리와 흐르는 강을 보며 걸어가야 했는데 풍경이 어찌나 낭만적인지,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술관을 다 보고 나올 때에 보니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거리였지만 이른 아침인 덕에 우리는 고즈넉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우피치에서 입장권 인증샷!,나는 우피치에서보티첼리의 그림이 가장 좋았다!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눈여겨보던 식당을 갔다.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던 식당이었는데 이탈리아 음식은 아이들이 평소에도 즐겨 먹던 음식들이라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다녀보기로 했기에 우리도 함께 줄을 섰다. 식당에 들어가서 보니 점심 코스 요리가 12유로였다. 애피타이저에 메인 요리 와인 반 병까지 나오는 완벽한 코스였는데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우리도 요리를 시키고 와인을 마시며 피렌체의 가성비 식당을 즐겼다. 이 식당은 피렌체를 떠나기 전까지 두 번이나 더 왔었다. 즉, 매일 한 번씩은 갔다는 말이다. 음식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우리 같은 여행객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오는 식당이었다. 우리끼리 피렌체 기사식당이라며 애정을 듬뿍 쏟았다.


배가 부르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인도 한 잔 마셨겠다, (사실 한 잔은 아니었다……하하) 또 미술관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났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 같이 낮잠에 빠져들었다. 피렌체의 아파트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복층에 더블베드가 2개씩인 우리 가족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깨끗한 침대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훨씬 개운해졌다. 개운해진 몸으로 이제 두오모를 보러 나갈 시간이 되었다. 가볍게 간식을 챙겨 먹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사실 지금까지는 유럽이 아직 성수기가 아닌 것인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또 최근 다녀온 볼차노에서는 인구밀도가 아주 낮았기에 피렌체의 수많은 인파는 낯설기만 했다. 좁은 골목길에도 사람이 꽉 차있는 관광객으로 채워진 도시. 사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왔던 도시는 따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였는데 지금 걷고 있는 피렌체는 소매치기가 있을까 조심하며 걸어야 하는 관광지 같기만 했다. 그래도 골목 끝에는 높이 서 있는, 마치 겉면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종탑이 하나 보인다. 그 옆의 건물이 두오모 성당이라고 구글맵이 말해준다. 두오모를 보면 마음이 달라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두오모쪽으로 걸어간다. 미리 사전에 두오모 관람을 예약하였기에 우리는 바로 입장했다. 오후 7시 정도면 해가 살짝 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노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예약했는데 사실 해는 질 생각이 없었다. 두오모 성당에 들어가 성전 내부는 잠깐 보고 좁은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한 명밖에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계단이라 발을 헛디딜까 염려가 되기도 했고 힘들어도 쉬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쯤 올라오면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싶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헥헥 거리며 올라가는 아들들과 남편에게 말했다.

“이 계단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라가면, 영원히 사랑하는 사이가 된대. 니들 엄마랑 영원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거야 각오했니? ” 나의 농담에 아이들과 남편이 피식 웃는다.


계단을 십여분쯤 올랐을까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위에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다 온 모양이다. 계단 위 바깥으로 나가는 문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드디어 정상이다.

두오모 성당의 꼭대기에 서서 피렌체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주황색 지붕의 집들과 그림 같은 종탑, 그리고 하늘과 저 뒤에 있는 동산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아까 걸어왔던 거리의 피렌체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나 역시 관광객이면서도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꼭대기에서 보고 있는 피렌체는 낭만 그 자체였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를 보았던 그 시점부터 내가 와보고 싶었던 낭만적인 피렌체, 그 피렌체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엄청난 높이에 사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에 오래 서있지는 못했지만, 자리에 앉아 피렌체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고 싶었는데, 지금 내 곁에 사진 찍고 있는 내 사랑이 세 명이나 있다. 낭만적인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던 피렌체의 전경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 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 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 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었다.

 @박상영,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나는 대학생이었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던져놓은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다. 이곳 피렌체에서. 그리고 사실 돌멩이 하나를 더 놓고 왔다. 여행 중에 나는 ‘이제 이런 여행은 올 수 없겠지’라며 계속 생각해 왔었다. 매일매일이 좋으면서도 정말 이런 여행은 이제 끝일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나를 서운하게 했었다. 그런데 피렌체에서 나는 돌멩이를 하나 더 놓았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그 돌멩이를 찾으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두오모에서 내려오는 길에 오케스트라 무료 공연이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받고 집 앞의 토스카나 음식점에서 오늘을 기억하며 짠! 우리는 와인 아이들은 사과주스였다


이전 14화 피사에 다녀와서 만난 피렌체의 인생 피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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