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김가진
그간 와이파이 부원들이 각종 학교 이슈들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인터뷰한 기사들은 많이 존재했지만, '인간 김철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아 과연 '교장 선생님'이 아닌 '인간 김철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이우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철원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제가 제 이름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부모님이 저에게 어떤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고. 저 스스로도 이름에 어떤 뜻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이름에 대해서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다른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는 저는 관심이 많아요. 제 이름에 대해선 관심이 없지만.(웃음) 왜 이런 이름일까? 그리고 이름과 그 사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내가 그와 어떤 지점과 연결이 되고 관련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하죠. 그래서 질문받은 다음에 ‘이제부터 생각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좋은 질문이었네요.”
(밝을 철 / 으뜸 원)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요. 근데 보니까 제가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먹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그냥 배고프면 먹고, 굳이 찾아먹거나 ‘이걸 먹고 싶다.’ 이런 게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식사 자리에서 굉장히 유쾌하고 명랑하고 깊거나 슬픈 이야기를 하고 그러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들. 그런 자리에서 먹었던 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먹은 걸 이야기해 볼게요. 돈가스, 국밥, 막국수, 스파게티, 그리고 학생들이랑 가장 많이 먹었던 건 떡볶이. 제가 주로... 고3 친구들은 힘들 때잖아요, 그래서 고3 친구들한테 ‘떡볶이 먹으러 갈까?’라고 해서 떡볶이를 한 달에 한 번씩은 먹었을걸요? 그다음에 학생들이 돈이 많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많이 비싼 건 아니고, 약간 돈을 얹어서 먹을 수 있는 걸 메뉴를 같이 먹는다거나 그랬죠. 지금은 코로나라 못하지만 학생들이랑 그렇게 어디 가서 많이 먹었어요. 지금도 학생들이랑 같이 먹고 싶어요. 근데 학생들이 잘 안 와요. 나한테.(웃음)"
“그냥 급식은 다 맛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있으면 먹고, 배고프면 먹고, 음식을 가리지 않아요. 집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아내가 해준다고 하면 맛있게 잘 먹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실제로 맛있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식사. 그런 것이 좋아요.”
“이런 걸 취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무 많아서 못 읽을 것 같아요. 제가 이제 말할 것도 다는 아니에요. 제 취미는 옛날 일기장 꺼내서 읽어보는 것, 옛날 수업 자료를 읽어보는 것. 아이들이 썼던 시를 제가 프린트해서 모아서 가지고 있거든요. 또, 옛날 나의 글 보는 것, 옛날에 읽었던 시와 소설 꺼내보는 것, 시나 소설 소리 내어서 암송하는 것. 이런 건 밤에 잠이 안 올 때 하는 거고, 제가 지나가면서 아이들을 봤는데, 특별하거나 되게 표정이 안 좋거나 되게 지쳐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노트에서 적어보는 것.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한 노래를 찾아서 듣고 들어 보는 것, 누군가에게 편지 쓰기, 깊은 밤의 거리를 한참 걸어보는 것. 제가 밤에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에 밤에 깨어있어요. 그러면 베란다에 나가서 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저녁노을이 내릴 때 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노을을 바라보는 거예요. 운전하며 가더라도 길가에 세워놓고 본다거나 그런 게 있죠. 낙엽 보는 것, 고2 사진 아이들 꺼내서 한참 동안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해줄 말과 듣고 싶은 말 생각해 보는 것. 고2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젝트나 수업을 상상해 보기. 이건 제가 요즘에 많이 고민하는 건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가지는 굉장히 각별한 마음이 있어요. 이 학생들이 코로나가 일어났을 때 학교에 왔고. 그래서 굉장히 많은 학교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못 느끼고 활동을 못해서 고2 아이들에게 가지는 미안함이나 그런 감정이 있어요. 고3 아이들과 잘 작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연습, 고1 아이들과 시 창작 수업할 내용을 겨울방학 때 잘 준비해서 수업하기, 요즘 운전 많이 안 하려고 하는데 운전이 취미가 된 것 같아요. 또, 좋아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과 문자나 전화하는 게 있어요. 이게 제 최근 취미예요.”
“누가 좋아한다고 하는 노래 들어봐요. 누가 좋아하거나 추천해 주면 찾아서 들어봐요. 또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들이 있긴 한데, 굉장히 많아요. 굉장히 다양하고 많아서 ‘제가 이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이렇게 하기 애매하죠. 그래도 저는 그중에 하나만 뽑자면 유재하 씨의 음악을 좋아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굉장히 많이 들었죠.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리워진 길’을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뭔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
“어린 시절을 생각했을 때 불행하게 지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스스로 슬픈 일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죠. 슬프고 애틋한 시간으로 10대 시절을 기억해요. 예를 들어서 할머니를 버스 정류장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던가, 엄마가 한동안 집을 떠나 계셨는데, ‘엄마가 집에 왔을까?’라는 생각으로 집에 달려왔는데 집에 독한 파마 향이 날 때. 옛날 파마약은 되게 독했거든요. ‘아 엄마가 왔다 갔구나.’ 그런 생각들. 노을이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들판에 바람 소리가 있을 때, 막막했을 때. 혼자 느꼈던 고독한 생각들이 저의 나이테에 남아있어요. 제 나이테에 이런 기억과 마음들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밝은 것보다 슬픔, 고통, 상처, 쓸쓸함에 훨씬 더 마음이 더 가고,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도 함께 수업에서 즐겁고 재밌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주로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가지고 얘기해 보려는 것 같아요.
그게 제10대 시절이었던 것 같고, 어렸을 땐 언제나 책 속으로 사라지는 아이였어요. 그런 쓸쓸한 시간을 버텨내는 건 책이었던 것 같아요. 책은 나에게 유일한 존재였어요. 책에 코를 박고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 같은.
또, 자연. 옛날에 남중, 남고를 나왔는데 굉장히 폭력적인 학교였어요. 그때 당시 뭐 다들 그랬지만. 그때 학교가 산속에 있는 학교라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 꽃들이 많아서 자연과 함께 있었어요. 노을,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들, 꽃들 그런 것들이 되게 많았죠. 그래서 제가 편지를 보낼 때도 날씨나 계절에 관련된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해요.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게 책과 자연이었던 것 같아요.”
“질문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적었어요. 1. 시 창작 수업의 모든 날들. 2. 사람과 함께 있는 모든 날들. 이 두 가지는 고민할 여지없이 바로. 한 1초도 안 되어서 적었어요. 바로 이 두 가지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저에게 완벽하다는 것은 ‘그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비어있거나 과도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그대로 잘 있는 상태가 완벽한 것 같아요. 시 창작 수업에서의 저와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날들. ‘우리가 완벽하게 함께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부족한 게 안 느껴지고 ‘너무 과도하게 채워져 있어서 빼야 해.’ 이런 느낌도 안 들어요.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 상태 그대로가 너무 좋다.’ 더하고 뺄 것이 없는. 그런 느낌의 완벽한 나날들, 시간들이 시 창작 수업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인 것 같아요.”
“저는 교사가 되기 위한 ‘결심’이란 말이 안 어울려요. ‘나는 교사가 돼야지. 그래서 학생들한테 좋은 선생님이 돼야지.’ 이렇게 결심하진 않았어요. 그냥 교사라고 하는 일은 저에게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거였어요. 막 결심하고, 선언하고, 막 이렇게 했다기보단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된 것 같아요.‘내가 겪고 있는 상처와 고통으로 무엇을 할 수 있지?’라는 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에요. ‘내가 뭔갈 경험하고 있다면 그 경험을 하는 이유가 내게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러면 이 경험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지? 무엇을 해볼 수 있지?’ 그런 생각을 어렸을 때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년 시절에 가족 안에서 느꼈던 어려움들, 학교 안에서 겪었던 굉장히 폭력적인 일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어나가면서 그때마다 질문했던 건 ‘이 경험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일기장에 그런 질문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어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저를 교사로 이끌게 한 것 같아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고 질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삶에 고통과 상처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희망적인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힘든 상황에 무너지고 주저앉지 않고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누가 발로 제 가슴을 쳐서 뒤로 넘어졌어요. 그리고 시집을 막 찢고 얼굴에 던지고 침 뱉고 욕하고 갔어요. 제가 찢어진 시집을 모아서 가방에 넣고 집에 와서 집에서 시집을 밤새 붙였어요. 스카치테이프로 이렇게 붙여서 다음 날 점심시간에 다시 읽었어요. 저는 굉장히 겁이 많고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를 떠올려 보면, ‘아 내가 거기서 무너지면 죽는다고 생각했구나.’ 사람의 몸도 그렇지만 정신과 마음이 죽으면, 내 정신이 죽으면 죽는 거잖아요. 존재 이유들이 있으니까. 그때 저를 지탱했던 것은 책이었거든요. 근데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책과 시집들을 그렇게 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교사를 택한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불가피했던 것 같아요.”
“저는 결심과 사명이 동기가 되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우학교 오기 전 두 학교를 거쳐 왔는데, 첫 번째 학교는 제가 너무 미숙했어요. 학생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실수도 많이 해서 교사가 안 맞는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들을 생각해 보고 그러다가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라고 해서 다른 학교에 갔어요. 두 번째 학교에서는 제가 노력한 것은 많지 않은데, 학생들이 저에게 굉장히 많은 행복을 줬어요. 이 아이들은 지금도 만나고 있고 주례도 서고 축시도 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1년 정도 두 번째 학교에 있을 때 중간쯤에 이우학교 공고가 나왔어요. 그때 제 마음은 ‘조금 더 혹독한 곳에서 교사라는 일에 대해 나를 놓아보자.’, ‘정말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지.’, ‘아이들과 만나는 이 직업을 평생 동안 하고 싶은지.’ 그렇다면 이우학교는 대안학교이고, 새로 시작하는 학교니까 얼마나 어려움이 많겠어요. 물론 앞의 두 학교에서 있을 때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잖아요. 여기는 개교하는 학교였고 새롭고 대안적인 걸 다 실험해야 하는 학교였고 굉장한 도전이 되는 학교였어요. 그래서 절 가장 힘든 환경에 놓아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혹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과 만나는 직업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제가 18년, 19년. 4년 임기를 마치고도 이 학교에 있겠다고 했는데, ‘아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우학교에 오게 된 이유는 그런 마음이 컸습니다. 막 새롭고 대안적인 걸 실현해서 더불어 살고 그런 거창한 마음은 없었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와서 많이 배웠어요. 저는 연약하고 불안전한 존재였지만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고 내적인 갈등들이 많은 상태로 이 학교에 왔는데 그래서 더 많이 배우려 했던 것 같아요. 이 학교에서 가르친다, 만든다, 무엇을 실현한다, 구현한다기보다는 저 스스로 잘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을 볼 때도 제가 아이들이라고 자꾸 표현하지만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볼 때도 그냥 한 인간, 존재라고 봐요. 똑같이 주어진 인생을 통과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로 보여요. ‘나는 교사고 넌 학생이고’, ‘난 교사고 넌 학부모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이우학교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나 많이 배웠어요. 제 인생에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을 학생들과 보냈어요.”
“제 이름에 대해선 제가 크게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잖아요. 저는 제가 잘 모르는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의 정체성과 존재를 잘 나타내는 것이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건 제 앞에 존재를 세우는 것이다. 네가 되게 아름답고 의미 있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이름을 통해서 불러 세운다. 이름이 중요하고 외우려고 노력하고 알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가다가 ‘안녕’이라고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날 교장실에 와서 제가 안녕이라고 한 아이의 사진을 봐요. 안녕이란 말 이상의 말을 해주고 싶기 때문에. ‘너 지난번에 급식실에서 봤더니 되게 맛있게 먹더라. 그 음식 좋아하니?’ 이렇게 묻고 싶은 거죠. 그래서 그 아이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결들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되게 커요. 그래서 이름을 아는 것도 그런 마음에 해당하는 거죠. 제가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겉에 있는 모습이 아닌 이면의 생각들. 그래서 그 아이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굉장히 다양한 결들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되게 커요. 그래서 이름을 아는 것도 그런 마음에 해당하는 거죠. 제가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겉에 있는 모습이 아닌 이면의 생각들. 그래서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그것의 시작이 이름인 거죠. ‘가진아!’ 이렇게 부른 것은 너와 대화하고, 너를 너답게 지켜주고 싶고, 잘 성장할 수 있게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는 의미예요. 이름을 부른다는 건.”
산하 - “ 저흰 그걸 되게 신기해했어요. 3, 4월에 입학하고 등교했을 때 어떻게 이름을 다 외우실 수 있는 건지. 아직도 많은 친구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이렇게 이름을 잘 외우시는지.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알아보시고. 저는 급식실에 있는데 제 이름을 딱 부르셔서 놀랐어요. ‘어떻게 아시지?’ 이렇게.”
“그때 여러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다 읽고, 1,2월에 한 사람당 거의 2시간씩 읽고 생각하고 적고 떠오르죠. ‘이 아이는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이런 걸 생각해요. 그래서 ‘얘 이름은 이산하야. 이산하.’ 이렇게 외우지는 않고 중고등학교 서류가 있잖아요. 또, 거기에 적힌 많은 말들이 있잖아요. 그 서류를 보면서 행간을 읽으려고 하죠. 그러면서 ‘아 이 친구는 중학교 때 이런 일들을 겪었을지도 몰라.’ 이러면서 만나지 않은 친구의 과거나 역사를 그려보는 거죠. 그러니까 이름이 붙을 수밖에 없어. 그걸 오랫동안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 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외워지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제가 1, 2월에 제일 많이 하는 일이 그거예요. 서류를 다 가져와서 교장실에 놓고, 읽는 거죠. 읽고 생각하고 떠올리고 또, 제가 말한 노트에 적고. 그런 거죠.”
“이것도 고민을 했어요. 저는 영화를 엄청 좋아해요. 저는 영화관에 가는 것이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과 똑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영화광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 특히 20대 때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 봤어요. 영화관에 불빛이 꺼져있고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에 너무 매료되고. 영화관에서 나와서 현실 세계와 영화의 세계 그 중간에 있을 때, 현실과 비현실이 구분이 안 되는 그 순간도 너무너무 사랑해요. 저에게 낯섦을 주는. 그래서 책이나 영화는 책이나 영화 속으로 저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고 무궁무진해서 말하면 하염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서점을 가면 책이 나를 불러요. 책이 나를 부르고 이야기를 건네 오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추천해 주기보다는.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어떤 책이 나를 부르면 그 책을 꺼내어 만나는 책. 계획했던 책, 계산했던 책이 아니라 낯설게, 예측 불가하게 만나는 책을 만나는 걸 한 번씩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서점에 가 그런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책이 저에게 ‘날 좀 읽어줘.’ 저는 그런 경험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나는 보석 같은 책들이 굉장히 많아요. 물론 어딘가에서 추천받거나 정보를 얻어서 만난 책도 있지만 예측불허로 만난 책은 더 자신의 것이 돼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영화도 영화관에 가서 시간을 보고 작품을 고르는 편이에요. 그래서 영어도 엄청 못하고 프랑스어도 모르고 이러는데, 어느 날 책이 말을 걸 때는 그것 때문에 어쨌든 영어나 프랑스 작품의 원서도 읽어보고 싶어서 씨름을 해요. 그래서 책을 추천하기보다는 그런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장르는 없고 안 가리고 다 봤어요.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나, 잔인한 영화도 초창기에는 가리지 않고 봤는데 최근에는 가려지는 것 같아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좋은 영화는 영화관 밖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는데 계속 생각하게 하고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좋아해요.”
“교장을 다시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순간이 시 창작 수강생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주제의 수업 때에요. 계획하지 않은 편지였는데 많이 울었어요. 선생님들에게 2번이나 연임을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날 시 창작 수업 때 편지 마지막 장을 읽은 후부터 못 떠나겠구나를 느꼈어요. 졸업생이 시 창작 노트에 쓴 글 마지막에 ‘내가 부끄러워하는 나를 넘어 내가 미워하는 이의 표정을 넘어 그 건너편의 시를 읽어내고 싶다. 세상에는 슬퍼서 울음조차 멈춘 이들이 너무 많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나, 나 자신이 건사하기도 너무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내가 부끄러워하는 나를 넘고 그 건너편 사람들을(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까지)라고 말했어요.
시는 희망의 글쓰기라고 정의하는 것 같아요. 시는 다른 것을 꿈꾸는 것 같죠. 다른 세상, 다른 나.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것이 시인 것 같아요.
시 창작 수업을 하는 간절한 이유는 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아주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희망을 보는 것이 어렵지만 그것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고 시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보는 것 외에 분명히 다른 세계가 있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 시인 것 같아요. 수업 시간 때 쓴 편지에 “너희들과 삶의 혼돈과 절망을 넘어서 무너지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건너편에 희망에 가보고 싶단다”라고 썼어요. 시를 가르치는 나의 행위는 삶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를 통해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역설적으로 이우학교의 시절이에요. 물론 유년시절, 10대 시절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힘겨움은 저 스스로가 그때의 나를 잘 위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때 그 시간이 저 스스로가 위로받지 못한 채 지내왔어요. 맘 속에는 여전히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고,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스스로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어요. 힘들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말할까 고민했는데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잘 안돼요. 힘들었던 순간도 있지만 이야기하기 적절한 단어를 못 찾았다. 그래서 이우학교의 시절을 뽑고 싶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에요.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볼 때 집에 돌아가면서 혼잣말로 다짐해요. “좋은 학교를 만들어야지, 아이들을 꿈꾸게 만들어주고, 아이들을 지켜주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돼야지, 아이들을 울게 하지 않겠어. 내가 아이들을 지키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면 애들이 괜찮겠지? 아프지 않겠지? 희망을 보겠지?” 혼잣말을 계속했어요. 또 하나는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시고 이우학교가 문제가 많다고 하실 때에요. 물론 대자보나 굴다리에 락카로 써져있는 맥락의 힘겨움이 아닌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한 것들이 사라졌을 때 미안해서 힘들어요. 내가 고단하고 마음이 아파서가 아닌 미안해서 힘든 거죠.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것들이 그것이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잘못된 방식이었던 일까?’ 그것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하는 죄책감이 많아요. 연임을 안 하겠다고 다른 선생님에게 말할 때 그런 말을 했어요. “내가 18, 19년을 있으면서 죄책감이 이렇게 깊은데 4년을 더해서 더 깊은 죄책감이 있으면 난 남은 삶을 못 산다.”라고. 이우학교라는 낯선 세계 속에 진입하며 힘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잘해주고 싶고, 그 힘겨움이 힘겨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있나?’라는 죄책감이 들어요. 특히 2020년 작년이 그런 면에서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가진 어떤 나의 경험,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그 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사람인데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서운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려고 해요. 제가 못나고 부족하고 서투르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라 스스로 애써야지라는 생각을 해요. 특히 아이들 앞에 그런 사람으로 서고 싶어요.”
“책방/서점을 하고 싶어요. 거기에 아이들이 많이 오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함께 밥도 먹고 술도 같이 마시고 싶어요. 또, 책도 같이 보고 노래도 같이 듣고 싶어요.”
“스스로 내가 어른이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 울창한 숲과 나무처럼 위대하다고 생각한 그런 어른들을 보았는데 지금에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철도 없기 때문에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른의 입장으로 해줄 말은 없지만, 겪었던 시간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말한다면 즐거움과 행복처럼 빛 같은 존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대안학교의 교장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치도 부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자기의 삶을 여유롭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자의 영역. 절망이나 고통 상처 문제에 대해서 바라보는 것, 응시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둘러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천천히 내가 보는 삶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고, 고통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극복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극복하라고 하면 듣는 사람이 들을 때는 ‘이것도 극복 못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극복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극복이 아닌 잘 다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순간이 나를 부서지게 하는 것이 아닌 잘 대응하는 기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저한테도 과제예요. 그것을 다루어가는 것을 계속 고민하고 계속 쓰러지고 고민하기를 반복하고, 그것을 혼자 하기보다는 같이 했으면 좋겠고, 허락이 된다면 옆에서 함께하고 싶어요. 혼자서 분투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고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시 창작 수업할 때 기억에 남는 식사에 대한 글이 있는데, 그날 너무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던 거예요. 이 친구가. 그래서 맛있는 거 먹자고 친구들한테 전화한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그걸 같이 먹어준 거예요. 마라탕을 먹었대요. 근데 마라탕이 다 식어도 친구들은 같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 친구들이 이 아이를 살렸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