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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존재하는 삶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

by 리솜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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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비비빅-. 삐비비빅-.


  아. 시끄러워. 어스름한 새벽, 더듬더듬 알람을 향해 손을 뻗는다. 출근이네. 오늘도 살아있다니. 죽고 싶다. 또 견뎌내야 하는구나.


  푹푹 꺼져가는 몸을 질척여 일으키다 생각한다. ‘애쓰지 않아도 살아 있고 싶다. 남들처럼.‘


  이 날은 유독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분리되어 있던 과거가 현재와 연결되면서 최근의 일상은 사는 게 아닌 '겨우 견뎌 내는' 게 되어 있었다.


https://brunch.co.kr/@leesomstory/32


  상황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어떤 날엔 그 길을 지나가도 썩 괜찮고, 때론 정말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그 순간을 넘기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날엔 검은 기운이 나를 덮치는 듯한 공포감에 휩싸여 한 걸음씩 겨우 용기를 내어 헤쳐 나가기도 했다. 아무리 힘겨운 들 어쩔 텐가. 현재의 나는 살아 있고, 일상은 유지해야 하고, 회사를 그만둘 순 없고, 그렇다고 집 안에 처박혀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건 내게 너무 억울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긴 싫었다. 차라리 미쳐서 죽고 싶다가도 또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굳건히 비집고 올라왔다.


  하염없이 우울해지고 싶다가도 그럴 틈 없이 삶이 나를 계속 붙잡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둠 끝에서 생기를 꾸역꾸역 마음에 담아 가며 버틴다. 


  나의 옛 글을 읽은 오랜 인연 K가 연락을 줬다. 때마침 아침 출근길이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꽉 닫혀가던 세상에 맑은 물길과 바람이 옅게 흘러오는 듯했다. 그래 맞다, 나에겐 이 친구가 있었지. 연락이 올 때면 늘 마음에 빛이 돈다. 그날따라 소중한 친구들과의 단톡방 알림도 오랜만에 울렸다. 각자의 삶을 털어놓다 일상의 틈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두터운 진심이 느껴져 조금 더 힘이 났다. 비록 나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차마 꺼내진 못했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풀어놓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분명 따뜻한 온도로 한껏 나를 껴안아 주리라. 그렇게 각자마다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늘 함께였다. 일하는 동안엔 어찌할 수 없는 우울감이 끈적하게 들러붙고, 퇴근길엔 문득 차도를 바라보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이렇게 홀로 무겁게 간직하고 있는 나의 아픔이 문득 참 가엽고 억울하다 느껴졌다. 품고 있는 상처가 그날따라 유독 아려와 집 오는 길 연인을 찾았다. 다정한 나의 사람은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준다. 그렇게 구슬픈 마음에 다시 숨통이 조금 트인다. 고마운 사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사가 생각난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때로 고작 그 작은 5분조차 차마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아프다는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끝에 서서 오늘 하루 살랑 바람이 들어왔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늘 5분은 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무언가에 짓눌려 감각하지 못했을 뿐.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한없이 비좁아져선 숨이 막혀 오게 되기 마련이니까.


  집에 돌아와 주변을 정돈하고 누운 뒤 푹 꺼져가는 침대 위에서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계속 힘든 걸까. 나에게 내가 뭘 해주어야 할까.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니. 알려줘."


  예상치 못했던 답이 들려왔다.


  "그저 존재하는 것. 그거면 돼."


  원하는 것에 대한 요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니.


  어쩌면 삶은 의외로 별 게 아닌 걸까? 삶이 힘든 이유는 '그저 존재하지 못하고' '해야 할 것'에 초점을 맞춰서일 수도 있으려나. 시작조차 엉성한 채로 다음 단계를 위해 살아가니 지지할 기반이 단단치 못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 걸까. 그저 숨만 쉰다면 그걸로 정말 충분한 걸까? 어쩌면 우리는 과도하게 뭔갈 하려다 스스로 사고를 불러선 절뚝이는 삶을 살게 되어 버리는 건가. 애쓰지 않고 존재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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