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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 a Fan Sep 01. 2024

사진 뒤 숨겨진 사연

엄마의 기록 #5

내가 살고 있는 BC(British Columbia) 주에는 록키산의 밴프(Banff)*라 불리는 곳이 있다.


휘슬러(Whistler, BC).


밴프(Banff)*: 캐나다 알버타 주의 관광지로, 밴프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남동쪽에 캔모어(Canmore)가 각각 위치하고, 캐나다 로키 산맥 관광의 핵심 지역이다.


저렴한 BC 캠핑장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2010년에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곳을 캠핑장으로 바꾼 장소로 예약할 수 있었다. 올림픽 당시 스키점프 경기가 있던 곳이었는데, 경기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그 현장의 뜨거움,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의 아름다움이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Whistler Olympic Park, BC


휘슬러에서 우리의 일정은 간단했다. 캠핑 그리고 곤돌라 PEAK 2 PEAK 타기. 곤돌라의 가격은 어른 한 사람당 $99 정도로 저렴한 것은 아니었지만, 4개의 곤돌라가 포함되고 산과 산 사이 이동을 위해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아침부터 날씨가 쾌청해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오늘도 ‘그러나’ 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Whistler Village Centre, BC


사실 휘슬러 방문 후기를 찾아봤을 때, 어린이집처럼 하루종일 아이를 맡기는 곳이 있다는 것을 봤었다. 직접 가보니 더 이해가 됐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곳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등산 코스들, 그러나 아이를 고려한다면 제한될 수 있는 높은 난이도. 아무리 평지 같은 쉬운 코스라도 2살 유아에게는 힘들 수 있었다.


욕심은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으니 왕복 30분 정도 되는 산책로를 택했다. 그냥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룰루랄라 걸어가면 참 좋겠지만, 아이는 조금 걸어가다 돌 줍느라 멈추고, 몇 걸음 더 가다가 벌레 보느라 멈추고, 아직 녹지 않은 눈더미에서 노느라 떠날 생각이 없는걸 겨우 설득해 이동했다. 정상 아닌 정상을 찍고 돌아가는 길이 다 오르막이라 왠지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안아달라고 조른다. 이제 일정의 시작인데 벌써 지쳤다.


그 와중에 찍힌 사진은 아주 기가 막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레스토랑에 갔다. 비록 먹는 메뉴는 햄버거에 감자튀김이었지만 끝내주는 날씨, 끝내주는 경치에 미슐렝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았다. 평소에는 뭐든 잘 먹던 아이가 오늘은 햄버거를 안 먹겠다고 투정이다. 감자튀김에 케첩을 잔뜩 묻혀서 먹는 모습에 괜히 (저러면 별로 건강에 안 좋은데 하는) 심기가 건드려졌다. 이미 산책에서 지친 데다가 편식하는 아이의 모습에 기분이 살짝 안 좋아지려는 그 찰나, 남편이 나에게 콜라를 쏟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콜라를 쏟기 전 평화로운 한 때


약간의 위태한 상황을 또 전환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우리 둘 중 한 명은 원하는 맛이 아닌 아이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맛을 택해야 했다. 남편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혼자 하나를 다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치사할 수 없었던 남편은 아이스크림을 양보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내 것을 함께 나눠먹었다.


분명 달달한 것이 들어갔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아이는 어디로 이동을 하든 짜증의 연속이었고, 그 짜증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남편의 입에서 참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 정말 여기 올라온다고 쓴 200불이 아깝네!”


아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갔다. 어쩌면 너무 우리 기준으로 기대를 하고 왔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건 아이의 낮잠이었다. 겨우 겨우 설득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고, 5분도 되지 않아 아이는 잠에 들었다. 그제야 우리도 잠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Whistler, BC


아름다웠던 풍경만큼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감탄할만한 사진들이 담겼다. 분명 행복했지만 그 순간은 짧았고, 아이 컨디션에 두 어른이 끌려다니느라 아주 멍멍이 고생을 했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면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서 절대, 다시는 안 해' 가 아닌 '그때 그랬지' 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


예쁘게 찍힌 아이의 사진 뒤에 사연 없는 부모가 있을까? 우연히 담긴 행복의 순간도 있지만, 그놈의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호롤롤로, 후루루까꿍' 하며 아이 앞에서 쇼를 하거나, “한 번만” 하면서 간곡히 부탁했던 게 나만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도 누군가의 행복이 더 커 보이는 그대여.


사진에 속지 마라.


누구에게나 힘들지 않은 육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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