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록 #8
올해 들어 처음으로 셋이 하는 여행이었다.
남편은 이번 해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쉼 없이 일했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사정은 아니지만 몇 년 뒤면 마주해야 하는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밴쿠버는 홍콩 다음으로 세계에서 집 값이 가장 비싼 도시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한국처럼 전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집을 구입해 모기지(morgage)를 내거나 렌트(rent)*를 하는 옵션 밖에 없는데, 콘도(condo) 혹은 타운 하우스(town house)*가 아닌 집을 구입하고 싶은 우리는 집 값의 10-20% 해당하는 기본 계약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밴쿠버에서 렌트 비용은 지역별 차이를 반영해 월평균 $1500-$3000이다. 단독주택의 경우 지역 상관없이 집 자체가 너무 낙후하지 않은 이상 10억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콘도와 타운 하우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신축은 마당이 있는 집과 값이 비등하다. 기본 계약금과 신용등급에 따라 모기지 금액이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자'라는 생각이 같아서, 당장의 만족은 주지만 금방 덧 없어지는 것에는 아끼고, 함께 보내는 시간, 즉 우리가 가치롭다 여기는 것에는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 우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하와이는 여러 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와이키키(Waikiki) 해변이 있는 오아후(Oahu) 섬을 선택했다.
이번 여행은 그 시작에 AMEX(American Express) 신용카드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이 카드는 음식점을 이용할 때 x5를 적립해 주는데 작년부터 이 카드만 집중적으로 사용해 8만 포인트 이상을 모았고, AMEX 사이트를 통해 비행기, 호텔, 자동차 렌트를 예약하니 $1000 정도 할인되어 총 $2000에 기본적인 옵션을 해결했다.
저녁 6시 35분 비행기를 타고 6시간 정도 날아가 하와이에 도착하니 시차로 인해 저녁 10시밖에 되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먼저 렌터카를 픽업하면서 보험으로 $400 정도를 더 지불했다. 호텔은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아웃리거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Outrigger Waikiki Beach Resort)를 예약했는데, 도착하니 여기는 무조건 발레파킹(valet parking)이었다. 하루에 $50씩 4일을 곱해 $200. 호텔 체크인을 하니 리조트 사용비가 따로 있다며 하루에 대략 $50씩 또 4일을 곱해 $200. 결국 신용카드 혜택으로 할인받았던 금액은 다시 신용카드로 곱게 반납되었다.
여행 첫날 우리의 일정은 오아후 섬의 동쪽이었다.
미리 확인했던 일기예보에서 첫째 날과 둘째 날이 맑고 나머지는 다 바람표시라 좋은 날씨가 필요한 일정을 먼저 선택한 것이었지만, 여행의 끝에 깨달은 것은 하와이의 날씨는 하루동안 수시로 변할 수 있고 (갑자기 먹구름이 끼거나, 마른하늘에 비가 내리는 경우), 일기예보의 바람표시는 평소보다 바람이 더 강할 수 있으나 흐리고 쌀쌀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호텔 조식을 따로 예약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먹을 곳이 너무 많은데 호텔 조식의 뻔한 메뉴로 한 끼를 채운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상큼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던 우리는 첫 끼니로 아사이 볼(acai bowl)을 선택했다. 맛집 중 하나였던 선라이즈 쉑(Sunrise Shack)이 바로 호텔 로비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사이 볼을 들고 호텔 뒤로 걸어 나가면 바로 와이키키 해변이 펼쳐지다니! 아, 이런 게 휴가지! 싶었다.
그다음으로 관광객과 현지인들 구별 없이 유명한 레오날드 베이커리(Leonard's Bakery)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후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넛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만들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넛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역시는 역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일정의 메인은 씨라이프 파크(Sea Life Park)였다. 아이의 흥미와 눈높이를 고려한 장소였지만, 나에게도 기대되는 곳이었다. 개장시간부터 동물들을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촘촘히 짜여 있어 제시간에 입장해야 알차게 볼 수 있었다. 여행의 설렘으로 알람 없이 일찍 일어난 우리에게 아침 10시는 아직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우리는 먼저 가는 길에 위치한 여러 룩아웃(Lookout)들을 들리기로 했다.
1. Lānaʻi Lookout
2. Halona Blowhole Lookout
3. Makapuʻu Lookout
씨라이프에서 가장 좋았던 두 가지는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돌고래 쇼였다. 앵무새 체험에서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손이 너무 작아 먹이를 들고 있어도 다가오지 않았지만, 아빠의 손에 아이의 손을 맞대어 기다리니 앵무새가 찾아와 주었다. 손에 있는 먹이를 콕 콕 쪼아 먹어도 무서워하지 않고 집중하며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돌고래 쇼는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미국 올란도에 있는 씨월드(Sea World)에 갔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돌고래와 사람 간의 깊은 교감과 그 관계로 인해 표현되는 돌고래의 애정 어린 몸짓은 보는 이들에게 감탄과 감동을 주었다. 남편은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점심은 씨라이프에서 먹지 않고 카일루아(Kailua) 지역으로 이동해 파이아 피시마켓(PAIA FISHMARKET-Kailua)에서 먹었다. 우리는 다양한 해산물을 즐기는 가족은 아니지만 섬에 왔으니 생선요리는 꼭 맛보고 싶었다. 한 마디로 음식을 평하자면, 양도 좋고 맛도 좋았다! 남편은 하와이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먹고 싶다 말할 정도로 만족스러워했다.
이동시간에 아이가 낮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에너지를 방출할 곳이 필요했다. 우리는 잠시 라니카이(Lanikai) 해변에 들렸다. 와이키키 해변의 모래는 고왔던 반면 이곳은 작은 조개 조각들이 섞여 있어 약간 거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해변의 어떤 조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모래와 파도가 아이의 좋은 벗이 되어 꺄르륵하는 웃음소리만이 해변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비록 계속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차로 돌아가는 길은 통곡의 해변이 되었지만.
숙소로 들어가는 길, 추천받았던 마카다미아 마켓에 잠시 들렸지만, 마카다미아를 시식할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크게 인상적인 것이 없었다.
저녁으로는 아델라 컨츄리 이터리(Adela's Country Eatery)를 선택했다. 메뉴는 파스타였지만 색소가 아닌 다양한 식재료로 표현한 여러 색깔의 면을 직접 제면 하고, 우베(ube) 치즈 케이크가 맛있다는 평에 끌려 가게 되었다. 주문할 때 배가 많이 고픈 상황은 아니어서 남편과 다 먹지 말고 남기자 말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관광객이 아닌 하와이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식당을 중심으로 조사했었다. 가격 높고 허울만 화려한 음식이 아닌 그 동네에 살면서 배고프면 떠오르는 곳, 그런 숨은 맛집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 맛, 양,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오늘의 삼시세끼였다.
숙소로 들어와 아이를 씻긴 후 오늘 하루의 가장 큰 숙제로서 이제 아이를 어떻게 재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가 스스로 침대로 올라가 말했다.
“엄마, 나 피곤해, 재워줘.”
옆에 잠시 누워있기만 했는데, 금세 새근거리는 숨소가 들렸다.
태어나 두 번째로 스스로 잠들기를 원한 기적과 이른 육퇴의 기쁨을 맛본 첫날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