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록 #10
“아가, 밥을 더 팍팍 먹어”
“엄마, 팍팍은 어디서 배웠어~“
순간 빵 터졌다. 아이도 마치 나의 그런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 좋아하며 함께 깔깔댔다. 최근 배워오는 새로운 단어들이 신기해서 그 말은 어디서 배웠어, 이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물어봤었는데, 내가 뱉은 말이 익살스러운 아이의 미소와 함께 작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평소 아이가 귀여운 수준으로 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이눔시키“ 하며 장난을 치곤 했었는데 어느 날 동물원에서 갑자기 집 고양이를 찾길래 아마 집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이눔시키 엄마, 왜 미야가 집에 있다고 해” 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답에 둘 다 길바닥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엄마한테 이눔시키라니, 이눔시키!” 라고 대답하며 아이의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엄마를 웃기고 싶은 건지 아니면 반복되었던 그 말이 지금 상황에 절묘하게 맞을 거라 판단한 건지 궁금할 정도로 아이는 말의 의미를 넘어 상호적 문맥을 이해한 듯했다. 신기했다. 아직 세 살도 안 된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이 속도가. 그러나 불안했다. 깨끗한 백지 같은 아이에게 나는 어떤 물감을 뿌려주고 있는 걸까?
요즘 나에게 따로 거울이 필요 없다. 평소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이를 보면 된다. 몇 년 전 교직 생활을 했던 당시, 담임했던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아이를 보면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이제 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무서웠다.
한 인간의 인생을 빚어내는 또 다른 인간, 부모.
너무 비장한 육아,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일찍 지쳐버리는 육아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역할을 가볍게 여길 수 없음을, 나에게 한 인생의 적절한 방향성을 이끌어주는 중요한 책임이 주어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를 살펴보게 된다.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아이의 모습, 저게 내 모습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는 모습, 저것도 내 모습일까? 아이의 사랑스럽고 예쁜 면이 나를 닮아서 그런가 하며 좋아했다가도, 아이의 미운 모습 또한 나에게서 기인된 것은 아닌가 고심해 본다. 이로 인해 나도 다시 어린아이가 된 마음으로 같이 성장하고, 이미 오랜 기간 형성된 내 성품의 모난 모퉁이를 깎아내는 작업이 계속된다.
너무 또 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감정과 행동이 절제된 연기자처럼 살 수는 없으니 자연스러운 나, 인간적인 엄마로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나도 하지 말아야지, 매일 결심의 결심을 거듭해 본다. 엄마는 하면서 자기한테만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억울할 테니까.
주말 오후, 장난감을 놀고 있는 아이를 살펴보다 기저귀가 많이 찬 것 같아서 기저귀를 만지며 지금 잠깐 갈자고 이야기하니, “어디서 내 프레셔스*를 만져, 응?” 하며 대답한다. 참내 기가 막혀서...... ‘어디서’ 를 사용하면서 나를 다시 혼내는 격이라니.
[*아이의 생식기는 소중하다는 의미에서 우리만의 은어로 “프레셔스”라 부르고 있다.]
아휴, 조상님들 말 중에 틀린 것 하나 없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