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록 #12
우리 집에는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아이 한 마리, 아니 한 명이 있다.
아이가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자라서 정서적으로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에게는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다.
먼저 우리 집 첫째, 강아지의 사연이다.
생후 6개월에 입양했다. 타지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남편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정말 외로움을 잊게 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느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을 때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일 나가는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깊은 애착이 생겨버린, 매일 나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부어주는 대상.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다. 산책 말고는 계속 강아지랑 꼼짝없이 집에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시동생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 사이, 감기약을 먹어버린 것이었다. 빨간 설탕 코팅이 되어 있어 달달했을 그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입 주위가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약통은 비어있었다.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평소 가던 병원은 예약된 시간 외에 찾아갈 수 없어 어디든 받아주는 곳을 가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안쪽 진료실까지 들어오게 했고 구토하게 만드는 주사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강아지 몸을 누르며 제압하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하룻밤을 두고 와야 했고, 다음날 찾아갔을 때 강아지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신을 누르며 죽이려 하고 또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오후부터 우리에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남편에게 그 반응이 강했다. 제압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뒷다리 쪽을 강하게 붙잡아서 그런지, 유난히 그 부위에 예민했다. 그 이후 나에게는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편을 심하게 무는 아찔한 사건이 몇 번 발생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문제없이 잘 지내는 듯했지만,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강아지와 놀고 싶은 마음에 하는 어눌하고 큰 몸짓들에 놀라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강아지의 거처는 집에서 뒷마당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우리 집 둘째, 고양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집 여왕님이다. 집에 데려와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부터 도도했다. 자신보다 한 10배는 큰 강아지 앞에서도 기에서 밀리지 않았다. 귀찮게 굴면 손톱 하나로 게임 오버. 우리는 늘 이 친구의 삶이 가장 부럽다고 말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그러나 한 가지, 과연 우리랑 집에서만 노는 게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서 키운 지 1년쯤 되었을 때, 밖에서도 다닐 수 있도록 풀어주었다. 집에서 뒷마당으로 연결된 개(犬)문을 통해 강아지가 나갈 때 자꾸 탈출을 시도하길래 몇 번 붙잡아 오다가, 지금 정도면 충분히 귀소본능이 형성되었을 것 같아 자유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녀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나가면 밥 먹으러 들어오지도 않고 하루종일 나갔다 저녁 느지막이 귀가했다. 어느 날 마주치면 나무 위, 어느 날은 지붕 위, 어느 날은 우리 집 앞에 있는 숲 속에서.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왜 이런 세상을 안 보여준 거야!’ 하며 사춘기 청소년처럼 우리에게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소심한 성격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또 이렇게 대담하고 모험을 즐기는 면이 있다는 것을 내보냄으로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밖에 나가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집 주위에 코요테, 올빼미 같은 천적들이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일렀다. 아이를 잃은 것처럼 울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잠깐 나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 다리에 스윽 몸을 비비며 인사를 건넸다. 2주 만이었다. 지난 며칠 폭우에 어딘가에서 옴짝달싹 못했는지 몸은 빼빼 마르고 다리 하나는 절뚝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며 큰돈을 들여 목에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다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