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미팅을 마치고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 얼른 아들을 데리러 갔다. 아내가 출장 가 있는 동안 아들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고, 아들과 함께 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들이 나름 알차고 재미있다. 문득, 살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하.
아이가 자라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점점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아빠와 어린 아들의 관계를 넘어, 어떤 때는 서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친구 같은 사이로 변해가고 있다. 나는 아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고민이나 힘들었던 일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 아들은 내 말에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아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아들이 겪는 상황을 나의 경험에 빗대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대화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이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하원을 마친 뒤, 아들과 함께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오늘도 친구들과 신나게 놀며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에서 한참 뛰어놀고 나서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하나씩 산 뒤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꺼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아들의 친구가 선생님께 혼나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다가가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괜찮아.”라고 말을 건넸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친구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건지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기에 자기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왜 아무도 친구에게 다가가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어린 아들이 그런 상황에서 친구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을 건넸다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짜식, 많이 컸네.'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말의 힘
얼마 전 아들 축구교실에서 있었던 비슷한 일이 떠올랐다.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상대팀 친구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축구하다가 친구가 넘어지면 먼저 가서 ‘괜찮아?’라고 물어봐 줘. 그러고 나서 다시 경기해도 괜찮아. 아들 몸도 하나, 아빠 몸도 하나, 친구 몸도 하나, 우리 모두 목숨은 하나밖에 없잖아. 경기는 다음에 이길 수 있고, 골은 다음에 넣을 수 있지만, 몸은 하나니까 다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먼저 친구를 챙겨주면 친구도 말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할 거야.”
그리고 어린이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이집에서도 혹시 친구가 속상해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괜찮아?’라고 먼저 물어봐 줘. 그런 한마디가 친구에게 큰 힘이 될 거야. 힘들어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때의 대화가 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걸까? 오늘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말을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너무도 대견했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무너지게 하기도 한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친구에게 건넨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라는 말이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어쩌면 그 친구는 아들의 말 한마디 덕분에 눈물을 멈추고 다시 웃음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가르쳐 준 것
오늘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것과 아이들이 부모의 행동을 옆에서 보고 따라 하며 배우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나도 아이에게 말한 것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괜찮아?”, “정말 힘들었겠다.” 같은 짧은 말이라도 진심이 담기면,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수 있다. 아들이 친구에게 건넨 한마디처럼, 오늘 내가 건넬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