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생각에 잠겨있던 한 씨의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부드드드 부드드드 "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통화가 이어지자 한 씨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네? 아, 알겠습니다. 네, 제가 모시고 가도록 하죠." 전화를 끊은 한 씨는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바라볼 뿐이었다. 최 씨의 기침,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의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폐암'이라고 진단했다. 한 씨의 어깨가 무겁게 축 처졌다.
초조한 마음에 한 씨는 옷가지를 대충 챙겨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한 씨는 자신의 고민에서 최 씨의 고민으로 들어섰다. 딸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 씨의 일만큼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한 씨는 최 씨에 대한 묘한 책임감에 휩싸였다. 마치 자신이 최 씨의 병에 어떤 역할을 한 것 같은, 자책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한 씨의 걸음이 무겁고 바쁘게 이어졌다.
"쿨럭, 켁켁, 흐으윽, 켁, 퉷!" 늘어진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린 최 씨의 눈동자에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그의 의식은 시들해져 갔다. 굳어져 가는 뼈마디와 식어가는 체온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듯 기침을 해댔다.
"켁, 켁, 쿨럭 푸헉!" 목구멍을 할퀴는 통증에 그는 숨을 헐떡였다. 말라붙은 입술을 축이려 물을 한 모금 삼켰지만 가렁가렁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빛줄기에 가려진 어둠 속,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 앞에서도 최 씨의 뇌리를 스치는 건 다름 아닌 한 씨였다. "거참, 내가 오지 말라 할 때는 그렇게 들락날락 하더니" 중얼거리는 소리는 이내 기침에 묻혀 사라졌다.
"영감님, 한 씨에요."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씨의 흐릿한 눈동자에 순간 빛이 스쳤다.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던가. 반가운 마음이 스며들었지만, 막상 입을 열자 쏟아지는 것은 기침뿐이었다. "쿨럭, 쿨럭, 크흐으윽, 퉤퉤!" 붉은 핏덩이가 섞인 가래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 씨는 헛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최 씨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건강검진을 받은 후로 최 씨의 병색이 더욱 짙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영감님,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같이 가시죠." 한 씨의 얼굴에는 평소의 밝은 미소가 없었다. 웃음기 없이 굳은 표정, 목소리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병원에서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리란 걸. '역시 병원에선 반가운 소리를 듣기 힘들군' 최 씨는 씁쓸한 생각에 잠겼지만, 이내 담담히 수긍했다. 달리 기대할 것도 없었다.
한 씨가 최 씨의 팔을 부축했다. 얇아지고 앙상해진 팔뚝이 손에 쥐어졌다. 살이 쭉 빠진 팔은 마디마디 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최 씨는 한 씨의 도움을 거부하지 않았다. 전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그 모습에 한 씨의 마음은 서글픔으로 물들어 갔다. 희고 앙상한 의사 가운 앞에 앉은 두 사람. 최 씨의 얼굴에는 담담함이, 한 씨의 얼굴에는 망연함이 서려 있었다. 가장 두려워하던 단어가 최 씨의 앞에 내려앉았다.
"폐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