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
폭탄 발언 후
난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외국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고단한 도피처였다.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렵고 힘들었다.
아이들 새벽 도시락에 학교 픽업과 드롭을 하며
많이 분주하게 살아냈다.
차라리 바쁜 게 나았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난 친정 식구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그들에게 상처를 줬기에 그 어떤 감정적인 수용도
요구할 수 없었다. 난 정서적 외톨이였다.
2020년의 난
코로나로 인해 급하게 귀국했다.
아빠와는 관계 = 서먹서먹하다.
엄마와는 관계 = 그저 그렇다.
형제와의 관계 = 거리를 두고 싶다. 피해 주고 싶지 않다.
용기 있게 고백은 했지만
모든 관계들이 내 안에서 붕괴되어 있었다.
온전하지 못했다. 왜 일까...
애도의 시간이 문제였다.
함께 아파하고 보듬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아빠는 장문의 문자로 사과하셨고
엄마는 잠시 우리 집을 방문해서 우셨다.
난 그 사과가 어색했고 혼란스러웠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위로할지 몰랐던 것 같다.
서로 상처를 함께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한바탕 통곡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며칠을 보내고 “괜찮아지겠지...”라는
푸념으로 상처를 봉합했다.
고백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그 과정은 너무나 어설펐다.
잘못된 애도의 시간은 변질된 상처로 남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울증은 상실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다.
그는 우울증과 애도를 구분했고
우울증은 과거의 상처를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애도 기간을 거치지 않은 상처가 우울증이 되어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빛이 통하지 않은 검은 천에 둘둘 말아서
기억 속 한편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한참 후에야 자각된 낸 상처는
우울 감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은 순간순간 내 삶을
붕괴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성과가 없었던 것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난 나 자신을 조금 용서할 수 있었다.
내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고 방치했던 나를 용서하고
그 상처에 정당성이라는 약을 처방했다.
열한 살 때부터 시작된 크고 작은 상처들에 말이다.
- ‘그’를 명절이면 만나야 하는 일.
- 가족의 권유로 '그'의 결혼식 축가 부른 일 등등
누군가.. 지금.. 어딘가에서
그 어떤 상처로 인해 괴롭다면
자기 자신의 상처를 가엾게 여기고 애도하길 바란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자신을 사랑하겠는가..
정신과 상담, 심리학 책, 지인과의 대화
이 모든 것들이 우울 감정에 도움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돌부리에 넘어져 우는 어린 시절의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
그 손을 잡기까지 큰 용기와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