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형수.. 이번에 못 내려가 봐서 미안해요... ”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큰 엄마?’
나에게 몹쓸 짓을 한 ‘그’의 어머니다.
나에겐 큰 어머니.
아버지의 형제애는 각별하다.
명절은 물론 형제회라는 모임을 따로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나고 안부를 묻는다.
한국전쟁 후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남았으니
더욱더 깊었던 관계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형제들과 교류하고 계셨고 나도 이해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있는 이 공간에서 전화통화를 하다니...
많은 생각이 스친다.
‘내 고통이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에겐 자동차 접촉사고처럼 작은 일이었나?’
‘나이 마흔이 넘은 아줌마이니 모든 게
무뎌질 것이라 생각했나? 난 아직도 아픈데..’
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이 힘드셨을 것이나 어리석게도
자꾸 오해가 쌓인다.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는 내 상처를 부모님께 전하는 걸 말렸다.
‘네가 부모님께 고백하고 난 후 네가 되려 상처 받을까 봐 무서워 ‘
언니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기대 또한 했던 모양이다.
다시는 그 집과는 연락을 안 할 것이라고
인연을 끊을 것이라고..
난 아빠의 소중한 딸이기에..
나의 기대는 실망이 되었다.
문자 하나로 딸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하신 아버지
그리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큰집을 대하시는 아버지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버지의 시간과 가치관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아빠는 날 사랑했고
난 두 아이가 있기에 어느 깊이에 도달해있는지 짐작한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나의 아픔을 외면하실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모르는 걸까..
내가 더 아팠던 이유는 내가 겪은 성추행은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가 친족 간이었기 때문이다.
1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친족 간 성범죄는 연평균 500건.
신고가 안 된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최소 두 배 이상이라 한다.
기소 건수도 신고 건수의 절반에 불과하다.
피해 아동이나 배우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범죄 사건 전문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그래도 가족’이란 생각으로 쉬쉬하는 탓에
친족 성범죄는 매우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다른 범죄 경력이 없는 친족이기에 가해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집 또한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용기 내어 고백 혹은 폭로했으나
나도 기사에 나온 케이스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 가족은 그냥 그야말로 ‘쉬쉬~’하고
‘그래도 가족인데’했다.
고백 혹은 폭로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위로>를 주었고
가족과의 좁힐 수 없는 ’ 거리‘ 도 만들었다.
부모님 형제들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이미 이전과 달랐다.
2020년 고백 전의 나와 후의 나는 많이 다르다.
남의 시선이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나의 상황 나의 마음을 더욱 많이 헤아린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에 의지하며
내 상처가 언젠가 무뎌지겠지 좀 더 아물겠지 한다.
누군가가 내 마음의 상처를 완벽히 이해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우리 모두 내 상처 외엔 이렇기 때문이다.
‘머리론 알지만 마음은...’ 이렇게..
때론 체념이 위로가, 상대를 이해하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