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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Jan 11. 2024

이 모든 것은 실패의 기록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아

삼십 년을 꽉 채워 살았습니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달동네 언덕 꼭대기에서 마주 보던 관악산 언저리까지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여섯 살 때의 장면이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요. 살면 살수록 삶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고, 그것을 이해하기엔 더 익어갈 시간이 필요하다며 은근슬쩍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제 자신을 보면 삼십 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른을 곱씹다 보니, 제 모부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저의 모부는 제가 산 시간 보다도 더 짧은 시간을 살았겠더라고요. 어린 나를 앞에 두고 언성을 높여 싸우던 그들이 무서웠고, 아무리 울고 불고 매달려도 떠나버린 아빠를 미워했습니다. 제게 아빠 흉을 보던 엄마가 버거웠고, 맘 편하게 사랑만 줄 수 없었던 그들이 야속했습니다.


우리가 그 소용돌이를 겪었을 때, 그들은 겨우 서른이거나 서른이 되지 않았을 테고, 삼십 년을 살고도 여전히 삶이 버겁고 불확실하며 두려운 제 자신을 보면, 그들 역시 그랬겠지 싶었어요. 삼십이라는 숫자는 그들의 어리숙함과 실수를 용서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일로부터, 제가 오랫동안 스스로에 대해 혐오해 왔던 많은 부분들 역시 용서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비슷한 입장이 되어봐야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게 되는 상상력의 부족을 탓해보지만, 어쨌든 시간은 저에게 용서라는 소중한 선물을 남긴 것 같습니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종종 삶이라는 것으로부터 뒷통수를 세게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은 실패의 연속이더군요. 노력과 성취의 반복이 삶인 줄만 알았는데 말이예요. 마음속에 품은 소망과 야망이 클수록, 소중함의 깊이가 깊을수록, 실패의 크기는 거대했어요. 돌아보면, 어째서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걸까 싶기도 해요. 제가 지닌 무지함, 순진함,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특권이 그 자신만만함의 토양이 되었을 테지요. 노력의 결과가 기대했던 미래로 이어지지 않을 때 크게 절망했고, 때로는 야망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위협으로 제 자신을 데려다 놓기도 했습니다. 자기혐오와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삶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의도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릴 수가 있냐고요.


용기 내어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삶이 어떻게 저를 배신 때렸는지요. 지금쯤 되면 박사학위를 땄을 줄 알았어요. 엄마가 직장을 잃게 되면서 서둘러 귀국하지 않았더라면요. 지금쯤 되면 자녀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다정한 파트너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면서요. 지금쯤 되면 중학교 때부터 꿈꿨던 대로 엄마를 모시고 유럽여행도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현실에서는 가족들에게 커피 한 잔 사는 것도 구박을 받습니다. "우리 중에 네가 제일 벼룩인데 커피를 왜 니가 사냐"며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어요.


'인생,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른데.'


'다른데'라는 단어와 마주하고 나니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 왜 배신감과 절망으로 이어졌던 걸까요? 살면서 우리는 자주 이렇게도 말하는데 말이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멋진데?"라고요. 그런데 뜻밖의 삶을 마주하고서는 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던 걸까요.


생일을 맞아 여러 번 읽어 닳고 닳은, 아끼는 책을 꺼내 읽다 보니 어떤 글귀가 새로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도록 사회화된 유언비어(p.42,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이 글귀를 읽고 나서 제가 바랐던 삶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런 단어들이 튀어나오더군요.

“박사학위, 다정하고 안락한 이성애 정상가족, 안정적인 수입”.

배신감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 ‘성취’를 이뤄내지 못한 삶은 안전하지 않고, 만족스러울 수 없다고, 저는 제 자신에게 지난 삼십 년간 계속 말해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배권력의 먹이가 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인식과 지식과는 상관없이, 혹은 그것을 이겨낼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체화됩니다.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에요. 삼십 년의 세월 동안 배신을 당한 게 있다면, 그건 제 삶이 아니라 제가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방식과 언어일 거예요. 자유와 평등과 해방은 입 속으로만 맴돌던 단어였다는 게 고스란히 탄로 나 버렸으니까요. 앞으로도 이런 부끄러운 발견들이 많으리라 짐작하며, 실패의 연속인 삶을 끈질기게 추적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눈물을 쏟게 하는, 아끼는 낡은 책 속의 문장들을 붙잡고 생일 오후를 보냈어요.


“우리는 우리의 꿈이 나타내는 이단적인 행동들을 시도해 보라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용기를 줘야 한다. 변화를 위한 우리의 움직임의 전선에서 가능성을 현실화할 길을 암시해 주는 것은 시뿐이다.”
p.43-44,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너무도 존경하는 그의 문장이 시도를 멈추지 말라고 부추겨서, 아마 앞으로도 저는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매번 처참하게, 때론 우습고 하찮은 꼴로 계속 실패하고 말 거예요.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그 삶이 세상으로부터 요구받은 두려움에 반발한다면 더더욱요. 그러니까 결국 이 모든 것은 실패의 기록. 앞으로도 보기 좋게 깨져보기로 합니다.


2024. 1. 11.

태어남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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