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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by 뭉치

평온한 일상이었다. 자잘했던 연애 (그것들을 연애라고 부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지만)들을 끝내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런 소모적인 관계들을 만들지 않으리. 애써 만들어놓은 생활패턴이 깨지고, 내가 사랑하는 일-이를테면 활동이라던가, 글쓰기라던가-에 쓸 에너지를 소진하고. 무엇보다, 감정을 나누는 일이 싫고 귀찮았다. 내 안에 있는 절망과 냉소, 미움을 꺼내서 보여주기엔 그것들이 너무 추해서 꺼내 보이기가 싫었고, 그렇다고 예쁜 말들을 늘어놓자니,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감추기는 그럭저럭 잘하지만 거짓말은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 내 입에선 사랑한다는 말이 죽어도 나오지를 않았다. 바닥까지 다 말라버린 샘 같은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다는 걸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싶었다. 탈혼을 겪고 오래도록 탈혼에 관한 글쓰기를 멈추지 못했다. 우습게도, 결혼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을 탈혼에 관해 썼다.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고, 어느 날은 길 한복판에 멈춰 선 채 메모장을 켜들고서 문장을 써 내려가다가, 그걸 다 쓰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를 못했다. 화가 나고 괴롭고 외로웠다. 내가 겪은 일들을 소화시키려 안간힘을 쓰다가 깨달았다. 내가 품은 미움이 다른 이들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사랑에 실패했다는 패배감. 사랑이 게임도 아닌데 왜 패배감이 들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패배감과 실망감은 거대했고 뜨거웠다. 그 열기를 견디고 견디던 어느 날 다짐했다. 사랑이라는 건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 차라리 조금 지루하지만 위험 없는 삶을 살겠다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돌봄이고, 사랑이 안정감이던데, 왜 나는 사랑이 불안이고 위험인 걸까. 나만 그런 건지,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건지 궁금했다. 동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사랑의 결론은 적어도 내 인생엔 없는 것 같았으니. 엄마 아빠의 삶을 보고도 그런 결론이 세상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냐며, 순진했던 유년시절을 마음껏 비웃어 주었다.


기대했던 대로, 삶은 평온했다. 기대하고, 기대받고, 실망하고, 실망시킬 일도 없다. 이해하고 이해시키려 배고파질 때까지 입을 털어댈 일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억지로 볼 일도, 내가 쓰지 않은 물건을 정리해야 할 일도 없다. 나와 고양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삶. 조금 밋밋하지만 티끌만큼의 위험도 없는 삶이었다. 약간 지루하고 나름 맘에 드는 일상을 반복한 지 1년쯤 되었으려나. 이제야 맞는 옷을 찾았다 싶었던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손님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좋아하는 마음. 예고 없이 찾아온 이 마음을 반가워해야 할지, 쫓아내야 할지 몰라 한동안 골치가 썩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어떤 매력적인 사람을 봐도 마음이 살랑거리지 않고, 나를 사랑한다는 누군가의 고백에 질색을 하며 도망가기 일쑤였던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가 낯설기도, 반갑기도, 짠하기도 하다. 사실 두려움이 더 크다. 그가 나를 향해 예쁜 말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모아 선물을 하면 ‘이게 얼마나 갈까’ 하고 도망갈 태세를 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그럴 때면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고양이 마냥 해맑은 눈을 깜빡이며 날 보는 애인이 조금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애를 사랑하는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그때 걔가 아니야. 정신 차려.’ 그러고는 용기 내어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다.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는 건 사리분별하라고 명령하는 머리다. 연애를 마음이 아닌 머리로 하고 있다니. 부디 사랑에 빠진 내 머리통이 잔뜩 쫄아붙어있는 마음을 이겨내기를 오늘도 바란다.


그와의 연애를 자꾸만 검열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그러면서 꼰대처럼 이런 말을 불쑥 스스로에게 내뱉곤 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남자들 다 똑같아.” 이 일상의 끝이 또 이혼이거나, 철천지 웬수가 되어 이별을 하거나, 폭력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다. 그러면 나는 나를 한참 또 미워하게 되겠지. 그런 날이 오기도 전에 애초부터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나를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내게 쟨이 말했다. 어차피 그와 헤어질 거고, 철천지 원수가 될 거고, 그를 미워하게 될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맘껏 사랑하라고. 그렇게 미워하던 30대 한남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걸 보면, 과연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랑주의자 클럽에 가입을 권한다고. 그의 말은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응원이었다. 나는 그와의 헤어짐을 벌써부터 겁내지만, 그 겁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사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시 사랑을 말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고, 한없이 강한 용기가 솟아오를 줄 알았는데. 그런 디즈니 마법 같은 서사는 내 삶에 없다. 다시 사랑을 말하면서도 두려움에 쩔쩔매는 나를 발견한다. 쪼그라든 마음을 겨우 안아 들고서, 나는 과연 이 사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이별을 길고 진하게 겪었는데, 그러고 나니 사랑마저 ‘난관’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지금의 나는, 섣부른 낙관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해 본다. 낙관 보다 난관인 편이 왠지 조금 더 믿음직스러우니까.


다시 사랑을 말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난관 앞에 서서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동여 매고, 발도 한 번 탁탁 굴러보고, 다리에 힘을 꽉 줘본다. 모험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마음이 말하고 있다.


예스, 나우 암 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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