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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Oct 13. 2024

낡은 시작

글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꽉 잠가둔 마음을 슬쩍 풀어버리고 말까 봐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어딘가 이음매가 헐거워지거나, 압력을 버티지 못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점검에 나서려면 멈추고 들여다봐야 되는 게 큰 부담이다. 결국 칙칙 새어 나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전력질주 모드로 돌입한다. 세게 달려야만, 누수로 발생하는 소리를 작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 적응기간이라 바쁜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새 공간은 정말 너무도 조용-해서 온종일 말 한마디 없이 지내야 하는 것이다. 이전 직장들에서 떠들썩하게 지냈던 일상에서 정말 180도 다른 일상으로 옮겨오려니, 적응에 필요한 에너지가 꽤 크다. 그러다 보니, 전력질주를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된 것인데, 내 속도가 줄어드니 무시해 왔던 물 새는 소리가 자꾸만 내 신경을 거스른다.  


새 직장은 사실 새로 들어간 곳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이전에 한 번 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다. 소중하고도 지긋지긋했던 첫 직장. 이전 자료들을 들춰보며 예전의 기록을 발견할 때면, 여길 내가 내 발로 다시 들어왔다니, 하는 자조감 같은 게 들기도 한다. 일은 너무도 재밌었지만, 그만큼 야근도 많았고, 무엇보다 어리숙한 사회초년생에게 풀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입사한 지 2주인가 3주 만에 고백공격을 했던 사람, 최상급자에게 나는 미운오리새 끼니까 알아서 조심하라고 했던 사람, 회의하는데 시끄럽다며 불러 모아 조용히 하라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털이 쭈뼛 설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사람과 공간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런 일이 다시없으리라는 기대가 없어 마음이 축 늘어지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사회 속에선 정말 별별 사람, 별별 일이 다 있기 마련이니까. 누군가에겐 내가 그 ‘별별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규모가 매우 작은 풀뿌리 단체에서, 소위 사람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던 환경에 지내다가, 도시 한복판에 있는 ‘회사’로 옮겨오려니, 회색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시골쥐처럼 마음이 쭈그러 들곤 한다.


예상치 못한 큰 누수는 사실 내 과거에 있었다. 다시 일하게 된 곳은 그와 만났던 곳이다. 첫 직장, 그것도 꿈에 그리던 활동가라는 직함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 자체에 매일이 설레던 나날이었다. 새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웠고, 경계심 같은 건 배우지 못한 때였다. 내가 일하던 단체에서 일했었다며 나를 반기던 그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크게 쓰여진 검정 자켓을 입고 있었고, 심지어 채식주의자였으며, 인권이며 생태며 나누는 대화마다 PC함의 기준을 충족했다. 그런 그가 함께 운동권 전시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을 때,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 기뻐서 방방 뛰었던 나를 기억한다.


그랬던 날로부터 7년, 그는 이제 내 옆에 없고, 나는 그를 만나게 한 단체로 다시 돌아왔다. 그에 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한 채로. 새로 맡게 된 캠페인 의제 중 하나나가 디지털 성폭력이라, 관련한 문서를 읽어야 하는데, 그 문서들을 읽을 때면, 그가 컴퓨터에 남겨두었던 성착취물들의 제목이 자꾸만 생각나 구역질이 올라오곤 한다. 꾹꾹 잠가두었던 기억인데, 자꾸만 과거를 들추는 내 무의식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때 그를 꼭 처벌받게 했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늦장을 부렸다며 자책에 빠진다.


이제는 정말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튼튼한 밸브로 꽉 잠가두고, 영원히 봉인해버리고 싶은데, 자꾸만 김이 새어 나오니까 열이 받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란 건 받아본 적 없는 것처럼 새 일상을 잘 살아나가고 싶지만, 역시나 주춤거리는 나를 보면서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지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예전에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이 있다. 고부갈등에 못 이겨 이혼을 했다던 그가 담는 이혼 후 일상이 나에게도 많은 용기가 되었다. 그랬던 그도 이혼 후 1년이 지나자 채널명도 바꾸고 영상 주제도 바꾸던데, 나는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발목 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전하려다가도 주춤, 많이 회복한 것 같다가도 주춤. 그럴수록 나는 밸브를 꽉 조이지만, 마음의 압력은 꽉 조인 밸브를 이겨내고야 만다.


다시 일하게 된 곳에서 나는 자꾸만 7년 전의 나를 만난다. 퇴근 후 그와 걷던 거리를 다시 누비면서, 그와 함께 밥을 먹던 식당을 지나치면서, 착하고 어렸던 7년 전의 나를 본다. 걔를 정말로 만나게 된다면 정신 차리라며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남자 보는 눈이 어쩜 그렇게 없냐며, 남자 보는 눈이 없으면 그와 만나지 말라던 엄마와 친구들의 말이라도 들었어야지, 말을 왜 그렇게 안 듣는 거냐며 욕을 실컷 해주고 싶다.


어쩌면 경계심과 미움을 배운 게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누비는 세상이 꽃밭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배웠기 때문이다. 예전엔 ‘인권단체에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다니’ 하며 절망했다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을 수 있는 게 삶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새로운 일상을 열면서, 마음의 밸브부터 꽉꽉 조인다. 마음은 꼭 잠가두고서, 설렘도 꽉 잠가두고서 제법 회사원 같은 삶의 패턴을 즐겨보기로 한다.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7년 전의 걔보다는 나은 삶을 개척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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