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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Nov 08. 2024

고등(高等) 동물-3


 아저씨 말대로 산속의 날씨는 도시와 사뭇 다른 듯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기온은 점점 내려갔으며 바깥도 금세 어두워졌다.


 서서히 온기가 올라오는 방바닥에 주성이 궤짝 위의 이불을 내려 펼쳤다. 이어 베개 두 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희수와 주성은 나란히 누웠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심장이 벌떡거리는 게 손을 통해 전달되는 성싶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주성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희수는 자꾸 목에 침이 고여 소리죽여 삼켜야했다.

 그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주성의 귀에까지 들렸는지 그의 숨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밖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데 엉키었다.

방이 빙빙 도는 듯했다.


 뜨겁게 육탄전을 벌이며 내는 두 사람의 소리는 세차게 내달리는 계곡물 소리와 비바람 소리, 천둥 소리에 묻혀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듯 상대를 탐닉하며, 온갖 신음소리를 내며 사랑의 교전을 계속했다.


 오빠나 남동생이 없었던 희수는 성인의 심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실수나 장난으로도 아버지의 그것을 본 적 없어 무지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친척 남동생들의 하얗고 야들야들한 것들만 봐오다, 어마무시하게 굵은 원통형의 우주발사체 로켓 같은 무엇이 느껴지자 몸이 폭발할 듯 뜨거워졌다.  

 그의  무기는 전방위로 그녀를 공격해왔다. 자신의 몸과 도킹이 이루어지는 순간 육신이 공중 분해되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두렵기보다 기꺼이 파괴당하고 싶은 욕망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미친 듯 갈구하는 희수에게 주성이 갑자기 자신의 무기를 스스로 거두며 말했다.

- 희수! 우리 이러면 안될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후두두두둑…쏴아아아…콸콸콸…휘이익…또르르….”     


 사방이 아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희수는 결국 적군을 항복시키고 말았다.

 주성은 울었고 희수는 웃었다.     



 외박을 하고 돌아온 희수를 어머니가 무서운 표정으로 맞았다.

- 어디서 누구와 뭘 하고 왔니?

- ….

- 그동안 네 행동이 수상하여 뒷조사를 하며, ROTC 장교 후보생과 연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하고 했는데… 혹시 그놈과 밤을 샌 거니?

- ….

- 오늘 이 시간부로 끊어라! 여자 혼자 힘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의사와 결혼해야 해! 그 쥐새끼가 의대로 진학해 병원을 기웃거릴지 모르니.

‘쥐새끼, 즉 쥐의 자식’이란 이복동생을 말했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은 것이다.     


 방학 동안 희수는 집 안에 감금됐다. 주성이 없는 도시, 차라리 감금이 달콤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매일같이 무주구천동에서의 낮과 밤을 되새겼다.   

  

 영겁 같던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주성이 퇴소하는 날이었다. 희수는 그와 만나기로 한 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수 시간째 기다려도 주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동생들과 자취를 하고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늦은 밤까지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온 희수는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따졌다.

- 왜죠?

- 애초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 제 운명을 부모님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 사람과 결혼할 거예요.

- 그 남자가 다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캠퍼스의 나무들이 어느새 화려한 옷으로 단장을 하였다. 가을이란 계절의 쓸쓸함과 이별의 상징을 알 것 같았다. 나뭇잎들이 저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뽐낸다 한들 곧 땅으로 떨어질 운명의 소멸이 두려운 게다. 봄의 꽃들 역시 낙화하고 시들지만 연초록 진초록 잎들이 뒤를 잇는 생명의 연속성에 안도를….


 강렬한 색상으로 장렬히 불태우는 나무들이 박수근 화백의 ‘겨울나무’ 되어 희수를 떨게 했다. 수없는 편지와 쪽지를 여러 경로로 전달했건만 주성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당연히 어머니의 손길을 의심해 마지않았지만, 발 달린 짐승으로서 단 한 번조차 나타나지 않는 그가 오히려 더 원망스러웠다. 속물근성 남자들이 여자와 하룻밤 자고 나서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분노가 치밀기도, 문득문득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무주구천동에서의 자신이 천박하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 차례 화공학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어머니에게 발각된 이후 더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 너의 외할아버지와 호형호제하는 대학 총장을 통해 ROTC 교관인 소령을 만났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이기는 걸 본 적 없었다. 오죽하면 아버지를 다른 여자에게로 쫓아냈을까. 걸핏하면 ‘병원장’을 들고 으름장과 협박을 일삼았으니. 어차피 조건을 선택한 아버지의 속물근성이나 도긴개긴, 누가 더하고 덜하지 않았다.     


 강의를 마친 후 집으로 가려는 희수에게 의과대학 동급생이 쪽지를 건네주었다. 희수는 행여 그가 헛물을 켜고 있나 싶어 ‘Sorry’를 외쳤다.

- 희수! 나도 임자 있는 사람을 넘볼 만큼 못나지도 궁하지도 않아. 조금 전 바깥에서 ROTC 단복 입은 학생이 전해달라며 주던데, 버릴까? 흐흐흐흐….

 희수는 빛의 속도로 그의 손을 낚아챘다.

- 10월 30일, ROTC 장교후보생 카니발 축제, 장소: S나이트클럽, 시간: 오후 5시부터….     


 자주색 카펫이 깔린 지하계단으로 내려갔다. 기역자로 꺾어들자 발밑이 쿵쿵 울려왔다. 출입구 쪽에 검정색 정장을 입은 웨이터가 정중히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우르르 쾅쾅!”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오는 캄캄한 실내의 천장에서는 지구본 닮은 무엇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물방울 그림자를 어지럽게 쏟아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이런 요지경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레드 카펫을 밟고 칸영화제, 청룡영화제 등의 시상식장 입구로 들어갔어야 했지만, 무엇에 씌어 엉뚱한 출구로 빠진 듯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입구에서 서성대고 희수에게 까만색 정장 차림의 사내가 다가와 자리를 안내할지 물었다. 희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후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ROTC 단복 입은 군인들과 연인들로 보이는 여성들임을 알 수 있었다. 수백 명도 넘어 보이는 피 끓는 청년들이 괴상한 몸짓으로 몸을 뒤흔들어대는데다 음악까지 최고 데시벨로 귀청을 때려대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저들 손에 의해 유지되거나 망가질 것 같은 착란이 일었다.

 곧 빠른 템포 음악이 시작되었다. 희수에게도 익숙한 〈남행열차〉의 첫 소절이었다. 무대는 삽시간에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듯 포효했다. 번쩍번쩍 터지는 사이키 조명 따라 광란의 몸짓이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같았다.


 이해하지 못할 팝송과 국내가요 몇 곡이 장마철 소나기처럼 훑고 지나가고, 느리고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어느새 실내는 침실 등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조명으로 바뀌며, 성난 파도도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남녀 커플들만이 무대에 남아 서로를 껴안은 채 천천히 음악을 타고 있었다.

 희수는 나이트클럽의 분위기를 빨리 파악했다.

 주성이 좀 늦나 보았다. 그의 동선을 훤히 아는 터라 기다리는 일이 익숙했다. 희수는 그의 바쁜 생활을 사랑했다. 그들이 최초로 말을 트기 시작한 도서관에서 주성이 전공을 물어왔을 때, 당시 인원을 충족하지 못한 어느 학과 이름을 댔었다. 어떤 계산도 없는 밝고 건강한 웃음이 그녀 속으로 들어왔다. 주성은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했다. 과외를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장교훈련을 받았다. 그를 통해 희수 의식에 정립된 가난은 아름다움이었다. 부모의 힘을 덜기 위해,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그를 사랑했다.     

 누군가에 의해 그녀 몸이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려지는가 싶더니,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무대 중앙으로 옮겨졌다. 주성이었다.

~~~~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얼싸 안겨

푸른 등불 아래 붉은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새빨간 드레스 걸쳐 입고 넘치는 그라스에 눈물지며

비 내리는 밤도 눈 내리는 밤도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뒤풀이 공연에서 한바탕 울음을 토했던 장○○이라는 가수의 목소리였다. 희수는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을 거친 전(全) 대한민국 겨레의 응집된 한(恨)이 모조리 상쇄되고,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방으로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절규하듯 토해내는 구성진 가락은 두 사람 가슴에 폭풍을 일으키며 사무친 통곡을 불러왔다. 주성은 희수와의 사이에 최소한의 공기조차 스며들지 못하게 강하게 압착한 다음 한손으로 그녀 허리를, 다른 한 손으론 머리를 자신의 얼굴로 끌어당기며 천천히 돌았다. 정수리로 물컹물컹 쏟아내는 뜨거운 액체가 희수의 얼굴과 목, 가슴골로 시냇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희수가 주성의 발을 자주 밟았으나 주성이 번쩍 들어 자신의 박자 속으로 안착시켰다.

 다시는 희수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에게 희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 나가고 싶어.

- 괜찮겠어?

- 간절해.

- 그래, 나가자!

- 어머니가 주성 씨와 ROTC 동정을 다 알고 있어. 어쩌면 바깥에서 망보고 있을지 몰라. 비상구가 없을까?

- 알아볼게.

 주성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희수 손을 꼭 붙든 채 그 사람을 앞세워 어디론가 갔다. 아까 자신이 내려온 계단이 아닌 주방 쪽이었다.

 좁고 컴컴한 계단을 오르자 건물 뒤편이 나왔다. 두 지구인은 외계인을 피해 급히 옆 건물인 모텔로 잠입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안방에서 동생들과 놀다 잠이 들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 냄새와 소리가 아련한 꿈속처럼 느껴지는가 싶더니 다시 잠에 취했다.

기이한 소리에 눈을 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리누르며 죽일 것 같은 자세로 달려들었으나 어머니가 반항하지 않았다. 바깥의 가로등에서 어스름한 빛이 새어들어 두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아버지 아래 깔려있는 어머니 입에서 묘한 신음 소리가 났다.

 묘한 상황을 더 자세히 지켜보기 위해 몸을 살짝 틀었다. 아버지의 몸이 급격한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동안 어머니의 신음과 교성은 더 커졌다. 그때였다. 동생이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폭주하는 기관차의 엔진과 경적 소리, 동생의 울음이 뒤섞인… 참으로 묘한 밤이었다.


 모텔 룸으로 안내된 주성과 희수는 무서운 속도로 서로를 갈구했다. 희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공격하던 밤을 생각하며 주성을 받아들였다. 첫날밤을 그와 무주구천동에서 보냈으나,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주성의 첫 여자이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동물의 포효하는 듯한 신음이 밤새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희수는 신이 동물에게 부여한 가장 큰 쾌락일지 모르는 강한 엑스터시, 전율, 오르가즘을 몇 차례나 경험했다.

 

 모텔에서 나오기 전 희수를 꼭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이는 주성에게 희수가 말뚝을 박듯 말했다.

- 나랑 결혼해줄 거지?

- 인생은 활과 방패를 교차하며 들어야 하는 선택의 연속, 공격과 방어를 지능적으로 활용하며 바둑의 묘수를 찾아가는 게임이라고나 할까. 선택할 권리와 피동적으로 당해야 하는 경우… 현재 내 위치가 후자야.

- 그래서?

-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공고로 진학해 대학에 들어오고, ROTC 훈련을 병행하며 장학금을 받기까지… 하나하나 일궈내며 ‘길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 그런데?

- 막다른 길에 봉착한 느낌이야.

- 기껏 이런 절망적인 말이나 들으려고…. 나 청혼한 거야.

- 신(神)이 있다고 믿지 않았으면서, 신(神)에게 매달렸어. 희수를 내게 보내달라고.

- 결혼하겠다고 해줘!

-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은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집안 대 집안끼리의 합일이라는 거 몰라?

- 집안 대 집안?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은 ‘명문가’란 허울을 뒤집어쓴 ‘수채 구덩이’야. 어떤 길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되니, 내가 의사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고 약속해 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 맹세할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희수에게 어머니가 뺨을 후려쳤다.

- 이런 천박한 X 같으니라구! 알아듣게 설명했건만. 그놈 인생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지 않거든….

희수는 귀를 막은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어머니는 그녀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다.

 "화공학과 문주성, ROTC 장교 후보생, 소위 달고 입대하기 전에 손 좀 봐 줬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도 자주 봐왔다. 아버지에게라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허울 좋은 병원장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을 뿐, 알맹이는 이미 다른 여자에게 가 있어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등하굣길을 어머니에게 저당 잡힌 채,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철벽 감시를 받으며, 주성에겐 더 큰 고통을 주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때서야 덜컥 겁이 났다. 어머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버지에게 자신 옆에서 말라 죽으라며 끝내 부인했다.

- 엄마, 만나지 않을 테니 주성씨 해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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