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밤은 고요하고 깊다.
도시였다면 한창이었겠지만, 시골은, 특히나 겨울은 저녁 6시 정도만 되어도 어둡다.
나는 어제 초저녁부터 잠에 들었고 모처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덕분에 여행을 하며 쌓였던 피로도 많이 풀렸다.
짐을 챙겨 모텔을 나서니 여전히 눈은 쌓여있었고, 눈발도 오락가락했다.
오늘은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갈 작정이다.
강원도 고성은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으로 지리도 아주 익숙한 곳인데, 옛 추억도 추억이지만 군생활을 마치며 사회로 한 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느끼고 싶었다.
조금 걷다가 나는 한계 삼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그러나 눈발이 심해서인지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길을 걷다 뒤돌아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다시 길을 걷다 뒤를 돌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지나가던 1톤 트럭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어디까지 가요?"
"안녕하세요? 진부령 넘어 고성으로 가려고 하는데 중간에 가시는 길까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갑시다"
나를 태워주신 아저씨는 용대자연휴양림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분이셨는데, 출근길 눈도 오는 안 좋은 날씨에 누가 손을 흔들고 있어 멈춰봤다고 하셨다.
차를 얻어 타고 가는 동안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용대자연휴양림까지 도착하였다. 나는 바로 진부령을 넘으려 했지만 기왕 왔으니 날도 추운데 믹스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도록 배려해 주셨다.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휴양림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 등 일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었는다.
나는 휴양림을 몇 번 이용한 경험이 있었기에 막연하게 객실관리 정도만을 생각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운영, 식생관리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업무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커다란 사회 공동체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인프라는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한 끼 식사를 얻어먹었던 식당에는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가 있었을 것이고, 무전여행 내내 걸었던 도로와 터널은 국토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지보수를 했을 것이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모든 일상생활의 뒤편에는 그 업계에 종사하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다시한번 느꼈던 대화였다.
눈 내린 진부령은 고요했다.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내 발소리만 들렸고, 새들의 지저귐도 다른 동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또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나를 지나가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경적을 울리며 내 옆에 섰다.
"어디를 가는데 혼자 걷고 계세요?"
"아 예, 진부령 넘어서 고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리가 꽤 될 텐데... 괜찮으면 타고 가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나를 태워다 주셨다.
아저씨는 고성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셨고 우리는 진부령을 넘는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고성에서 군생활을 했던 경험 덕분에 얘기가 잘 통한 것은 물론, 아저씨도 나의 무전여행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그렇게 어느덧 간성읍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나를 내려주시며 눈도 많이 왔는데 하루정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얘기하라 하셨다. 무전여행을 하며 차도 먼저 태워주시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아저씨에게 너무 감사하였고, 나도 아저씨를 따라갈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나는 고성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아저씨는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셨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딸랑-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적막을 가르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냈다. 휘이 돌아가는 바람소리와 풍경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간성읍내에 위치한 건봉사 포교당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건봉사는 내가 군생활을 하던 당시 유격훈련장 인근에 있던 강원도 고성 최북단에 위치한 사찰인데, 제법 유서가 깊은 사찰이었다.
군생활을 할 당시 나는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여서 주말이면 법회에 나가곤 했는데, 간혹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읍내에 위치한 이곳 포교당에 오기도 하였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어쩌다 한 번 법당에 와 앉으면 마음이 편했고 생각도 정리가 되었다.
또한 누구나 그렇듯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할 때가 되면 사회에서 무엇을 할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대학교 졸업과 또 다른 수험생활을 앞둔 나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초심을 되살리기에 가장 좋은 곳은 이곳 강원도 고성이었다.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자 스님이 나와계셨다.
스님은 나를 보시고는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셨고 무전여행 중에 잠시 들렀다고 말씀드리자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라고 배려해 주셨다.
스님께서 생활하시는 공간은 차분하고 정갈했다. 한쪽 벽면에는 서적이 가득했고 한쪽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스님과 앉아 제법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군생활을 하며 이곳에 몇 차례 왔었던 얘기, 졸업과 수험생활을 앞둔 현재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 인생에 대한 얘기 등 주제도 다양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스님들의 생활에 관한 대화였다.
나는 평소 불교는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고 독립된 생활을 하기에 불교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기에 문득 스님은 어떻게 되는 건지, 스님들의 생활은 어떠한지 질문하였는데 답변을 듣고 보니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 수행을 하는 불교 고유의 모습도 분명히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들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님이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자라는 일종의 수습기간을 거치고, 승가대학 등의 불교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시험도 통과해야 하는 등의 복잡한 절차와 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비단 불교조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무원 조직, 회사조직, 군대조직 등의 조직에서도 볼 수 있는 체계였기에, 앞으로 내가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가장 낮은 직책부터 배우고 익히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야 하는 것임을, 나의 지식과 경험이 무르익기 전에 너무 빠르게 올라가도 문제이지만 너무 느리게 올라가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며 앞을 봐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차를 다 마셨다.
스님은 다음 일정이 있으셔서 가봐야 한다고 하셨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기에 나도 간성읍내 이곳저곳을 좀 더 돌아볼 작정이었다.
스님은 나와 작별하기 전에 기왕 이곳에 왔으니 원 없이 가보고 싶은 곳도 가보고, 찾고 싶은 것도 찾아보라며 하루 숙소를 하루 잡아주셨고, 근처 식당에 말씀하시어 두 끼 분의 식사도 해결해 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렸지만 동시에 너무 죄송하였다. 무전여행 중에 받은 호의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리라 다짐하였다.
해가 질 때까지 간성읍 일대를 걸어 다녔다.
군생활을 했던 곳인 만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추억하였다.
또한 무전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화천의 참빛복음 기도원, 양구의 봉안사, 고성의 건봉사 등 많은 곳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떠올리고 생각을 이어나갔다.
눈을 밟으며 느껴지는 촉감, 눈 내린 마을의 아련한 풍경, 식당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가 어우러져 강렬한 기억을 남기며 나의 무전여행은 그렇게 완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