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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 Oct 20. 2024

(완결) 무전여행에서 만난 사람

무전여행 마지막날, 석문리에 동이 트고 있다.


오전 6시경.


깊게 잠들어있던 석문리가 조금씩 잠에서 깨고 있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예배당에는 주민분들께서 새벽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짐을 챙겨 목사님께서 생활하시는 공간으로 가보았으나, 불이 꺼져있었고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실례가 될까 싶어 감사 쪽지를 남기고 길을 나섰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정들이 있어, 오늘로써 모든 여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10박 11일간의 무전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간성읍내로 나와 7번 국도를 따라 걸음을 계속했다.


나는 석문리를 떠나 속초로 방향을 잡고 원 없이 걸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눈호강을 했고, 춥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동해바다를 즐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근처 어촌마을에 사시는 어부 한 분이 나를 태워주셨다. 그분은 수십 년째 배를 타셨는데, 바다라는 대자연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려주셨다.


지금은 비록 잔잔하지만, 조금만 배를 몰고 나가면 순식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파도를 만들어내고, 그 파도를 이겨내며 생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의 삶이 어떠한지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얼마 전 용대 자연휴양림에서 만났던 직원분이 떠올랐다.


단지 객실만 있는 줄 알았던 휴양림 뒤편에 얼마나 많은 업무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식탁에 생선구이 한 마리가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분께서는 얼마 전, 강원도 고성에 눈이 엄청나게 왔다며 바다에도 이렇게 많은 눈이 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바다에도 눈이 오나요?"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당연히 바다에도 눈이 오고 비가 온다.


다만, 육지에 비가 오면 바닥을 적시고 눈이 오면 그 눈이 쌓이지만, 바다는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바다에 눈이 쌓인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순간적으로 '바다에도 눈이 오나?'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비와 눈조차 그 본질은 보지 못한 채 바닥에 남기는 흔적만 좇는 내가, 인생에 대해 사유할 수 있을지, 지혜를 좇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문득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거나 허탈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인생여행은 이제 시작이니까.





대포항 앞바다는 잔잔했다.



나는 대포항 앞에서 파도가 자갈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내려놓고 한참을 쉬었다.


일상생활을 하였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열하루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고독. 


그것은 내 인생의 쉼표였다.


문장을 완전히 마치지도, 그렇다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쉼표지만, 내게 쉼표는 다음 문장을 써내려 가기 위한 길잡이가 되었다.






다시 강릉을 향해 걷다 보니 쉼터 한편에 차를 정차하고 담배 한 대를 태우시던 아저씨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분은 나의 행색이 특이했는지 나를 잠시 쳐다보셨고, 나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목례하고 그분을 스쳐 지나가는데 나를 부르셨다.


"여행 중인 것 같은데...어디까지 가나?"


"아, 네...강릉으로 가고 있습니다."


"괜찮으면 타"


우리나라와 동남아를 오가며 사업을 하시던 그분은, 친구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한 후 다시 동남아로 돌아가기 전 친구분과 같이 시간을 보냈던 동해바다를 돌아보시며 잠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분의 눈빛과 말씀에는 중간중간 상심과 감상이 비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특히 경제신문을 왜 봐야 하는지, 동남아의 정세가 어떠한지, 그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술술 풀어내며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은 그렇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세계를 무대로 살아도 보라는 조언을 남기셨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에 통달한 고수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초보에게 건네는 소중한 조언 같은 것이었다.


그분과 나는 중간에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 하고, 바다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경치를 즐기기도 했다.

나는 여행의 마지막까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고, 강릉 송정해변에 도착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무전여행의 마지막날. 강릉 남대천의 해가 저물어 간다.


무전여행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뒤로한 채,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여행.


10박 11일 동안 농부, 어부, 스님, 목사님, 사업가, 자영업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하고 교류했던 여행.


그러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나 자신을 만난 것이었다.


남양주에서 출발하여 강릉까지의 시간을 곱씹어보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질문하고 답하며 나를 찾았던 여행.


비록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무전여행을 통해 느낀 수많은 것을 그저 순간으로 끝낸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임을, 앞으로 삶을 살면서 계속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고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나의 무전여행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나의 인생여행은 무전여행이 끝난 15년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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