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봉안사에서 용하리로 넘어가고 있다.
양구 봉안사에서의 이틀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나는 공양간과 승방 청소를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스님을 뵈었다. 스님은 절에 머무는 동안 의미 있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하시며 남은 여행도 잘 마무리하라는 덕담을 주셨다.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처사님은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며 인사를 건넸고, 보살님은 가는 길에 굶지 말라며 김밥을 싸주셨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분들께 받은 도움과 배려 그리고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마음 한 켠이 울컥했다.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누고,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려 봉안사를 뒤로했다.
그러나 나의 발걸음에는 알 수 없는 경쾌함이 있었다. 여행 내내 불안하고 방향을 잡지 못해 어쩔 줄 몰랐던 나의 발걸음에 무게가 잡혀갔다.중심을 잡아갔다.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상관없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인제군 원통리를 지나 한계리로 향하고 있다.
나는 어느새 인제군 원통리를 지나 한계리를 향하고 있었다.
눈 내린 설악산 자락의 풍경은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군생활을 할 때 몇 번이나 왔던 한계삼거리였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보는 눈 내린 풍경이 새삼스럽고 그림 같았다.
넋을 놓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다.
근처에 예술인 마을과 그 외 작은 마을이 있어 걸음을 옮겨봤지만 명절 직후여서 그런지 인기척을 전혀 찾지 못했다.
쉴 곳을 찾지 못해 진부령을 넘어볼까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진부령을 넘으면 밤이 되어서야 고성에 도착할 텐데 눈도 오는 날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선택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한계리의 작은 모텔에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비록 무전여행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요청을 하며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있었고,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이번만큼은 갖고 있던 돈을 쓰기로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남양주의 작은 사찰에서 스님께 받은 돈을 꺼냈다.
정작 죄송한 것은 나인데, 하루 재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를 면사무소까지 배웅해 주시고 필요할 때 쓰라며 넣어주신 돈.
나는 스님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예술인 마을에서 보이는 한계리
한계리 인근 모텔에 방을 잡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록 추웠지만 한참을 앉아 멍하니 눈 내린 경치를 즐겼다.
내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일상생활을 하며 이렇게 원 없이 눈을 보고,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서 자연을 즐기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양구에서 광치령을 넘어 인제까지 오는 길에도 나는 황홀한 풍경을 즐기면서도 계속하여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교육을 받고, 직업을 선택하고, 경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나의 인생에 대해 찾고 싶었던 질문과 답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은 계속해서 변한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나도 강물도 늘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학교도 졸업하고, 외국어도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며 자기계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발에 부딪히며 돌아나가는 작은 와류도 신경을 써야하지만, 그러나 나는 동시에 강물 전체를 바라보며 관조하는 의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도 되고 싶었다.
내 발에 부딪히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물길처럼, 일상생활에서는 비록 다른 사람들 말에 흔들리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며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태도.
그렇게 살기 위해 내가 찾고 싶었던 것.
그것은 지혜였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여행을 마치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내 나름대로 지혜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비록 부족함이 많지만, 앞으로도 평생 부족하겠지만, 적어도 무전여행에서 느꼈던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돌아본다.
한계리의 하루가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