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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 Aug 25. 2024

#02 관광과 여행사이

남양주 수동계곡의 겨울은 조용하다.


첫날부터 산속에서 길을 잃고 겨우 내려온 나는 남양주에 계시는 고모와 사촌동생들에게 연락을 했다.


이미 밤이 되었고, 뒤꿈치는 다 까진 데다가, 진눈깨비까지 맞아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여행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근처의 고모댁으로 향했다.


우리는 평소 한 번씩 연락도 주고받고 만나는 사이기도 했지만, 산속에서의 불안한 감정이 있던 터에 예정에도 없이 이렇게 만나게 되니 평소보다 더욱 반갑고 편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식사도 하고 막걸리도 한 잔 하며 밀렸던 얘기를 나누었고, 지치고 불안했던 첫날을 그렇게 보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을 떠날 때 가족들과 친구들과 계획을 짜고, 식당을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은 대부분 계획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설사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아예 방문하는 지역이 바뀌거나, 숙소가 바뀌는 경우는 없었다.


미리 알아본 맛집을 가고, 관광지를 둘러보고, 숙소에 체크인을 하며 나와 늘 함께했던 익숙한 이들과 장소만 바뀐 채 정해진 계획 안에서 움직여온 여행.


그러나 계획과 일정이 수시로 바뀌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잠시나마 그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지냈던 여행은 이번 무전여행이 처음이었다.


늘상 만나던 고모와 사촌도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만나니 새로웠고, 마을 이장님, 스님, 어부, 사업가, 목사님 등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던 여행.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의 나의 여행은 관광에 가까웠다.


관광과 여행 모두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하지만, 짧은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여행이었다.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넘어가는 길. 마을이 저 멀리 아득하다.


어느덧 오후 늦은 시간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수동계곡을 지나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히치하이킹 덕분이었다.


지도를 보니 계속 걷기만 해서는 가평까지 넘어가지 못할 것 같아, 조금 서두르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을 해보았다.


그러나 차들이 다니는 도로 한 편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택시를 잡듯 손을 흔드는 행동을 하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나를 한 번 보고 지나칠 테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테지만, 굉장히 부끄럽기도 했고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든 처음에는 낯설었던 히치하이킹도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생각보다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많아 덕분에 이동이 편했고, 짧게나마 오고 가는 이야기가 새로웠다.


그렇게 두어번의 히치하이킹 이후 나는 남양주와 가평의 경계를 걷고있었는데, 다음 마을까지는 거리도 제법 멀어 보였고, 이미 해가 넘어가는 시점이어서 서둘러 쉴 곳을 찾아야 했다.


무전여행을 떠나 첫날은 고모댁에서 쉬었지만,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내 스스로 쉴 곳을 마련해야 했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 한 끼 부탁할 용기도 없어 밥을 먹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일도 아니었다.


잠을 어디서 잘 것인가.


지금은 그것이 제일 큰 과제였다.


남양주와 가평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사찰의 강아지가 반가웠다.


좀 더 걷다 보니 작은 사찰이 하나 나와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사찰에는 아무도 없었고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이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찰을 나선 나는 조금 더 걸어보았는데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집 몇 채가 모여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 집 굴뚝에 연기는 올라가는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무언가 도량처럼 보이는 듯한 곳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이곳은 어떤 분들이 사는 곳일까. 속세를 떠나 수행하며 지내는 분들이 계신 곳일까, 그냥 평범한 마을인 것일까?


나름대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지만 역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해가 산으로 넘어가버렸다.






이제는 정말 혼자다.


배도 고프고, 길은 어둡고, 마을은 너무 멀었다. 힘들게 마을까지 간다 해도 너무 늦은 시간 이어서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강아지가 지키던 작은 사찰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찰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지만, 아까 만났던 강아지가 잠시 나를 반겨주니 불안했던 마음에 퍽 위안이 되었다. 작은 친구는 곧 제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스님이 생활하는 듯한 공간에 현재 사정을 설명하고 법당에서 추위라도 피한 뒤 아침 일찍 떠나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방 뒤편에 위치한 법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법당에 들어가니 향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고, 은은한 조명도 따뜻했다.


절집에 왔으면 절을 해야지. 


나는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낯선 환경에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익숙해지니 긴장이 점차 풀리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을 따라갔다.


대학생활, 학점, 졸업, 취업, 시험준비...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내게 주어진 본분과 내가 해야 할 과제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졸업하면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며 머리가 쉼 없이 돌아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현실에서는 내 미래에 대한,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없었다.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만나고, 술을 마시고, 티비를 보며 외부로부터 몰려드는 정보와 감각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삶의 연속.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수동적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찾고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나름대로의 답은 하나 건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법당에서의 시간이 흘러갔다.






부아앙- 끼이익-

앉은 채 살짝 선잠이 들었나 보다.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철컥- 쿵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저벅저벅-

쪽지를 두고 온 방 근처에서 발소리가 들리다 잠시 조용해졌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내가 남겨놓은 쪽지를 읽으시는 듯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방문을 지나 법당 쪽으로 다가온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허허, 이 늦은 시간에...쪽지 보았네"


스님 한 분이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갑자기 마음 한켠이 울컥했다. 하룻밤 잘 곳도 없었다. 밥도 먹지 못했고, 수십 킬로 걸어 몸은 지쳐있었지만 혼자서 외롭게 보냈던 하루, 스스로에게 의지했던 하루였다.


생전 처음 보는 분의 단 한마디였지만, 나를 걱정해 주는 듯한 그 말에 울컥했던 마음을 다잡으며 일어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스님, 고개를 넘는데 해가 져서 마땅히 갈 곳이 없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해 뜰 때까지만 추위만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요? 조용히 있다가 아침 일찍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됩니다. 요즘 같은 때 이러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 행사가 있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내가 학생을 신경 써줄 수가 없어요. 미안하지만 나오셔야 합니다."


스님의 대답은 절망적이었지만 신기하게 나는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외롭고 힘든 상황은 비록 달라지지 않았을지만, 생면부지의 남이라도 누군가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네 죄송합니다. 스님. 제가 너무 갑자기 찾아와 무례했습니다. 얼른 나가보겠습니다."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겨 일어났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스님이 나를 불렀다.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어떻게 가려고 그래요. 내가 근처 마을까지 태워다 줄 테니 거기까지 같이 갑시다."


그렇게 나는 감사하고 죄송하게도 스님의 차를 얻어 탔다.


해가 넘어간 어두운 시골 산속길은 상당히 길고 어두웠다.


"학생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나도 어렸을 때 비슷하게 여행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무전여행을 그냥 하지는 않을 테고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찾고 싶은 걸 찾길 바랄게요."


스님과 함께 탄 차는 가평군 상면 면사무소 앞에 멈췄다.


"하룻밤 재워주면 좋았을 텐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이해해 줘요. 그리고 이거 받아요. 내가 여행했을 때는 좀 나았지만, 지금은 세상 인심이 예전 같지 않으니 아무리 무전여행이라도 필요할 거예요. 몸 조심해요."


내 손에는 현금 삼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데 2010년 당시에는 제법 큰돈이었다.


멀어져 가는 스님의 차를 보며 나는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가평군 상면 연하리


어두운 밤하늘에 빽빽하게 채워진 별빛이 빛나는 시골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정자가 있었고, 논밭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이따금씩 돌아다니는 조용한 마을.


스님 덕분에 용기를 얻은 나는 늦은 시간임에도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 한분께 사정설명을 하니 감사하게도 만두와 과일을 주시며 면사무소에 가보라고 하셨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면사무소 숙직실을 부탁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나는 그 길로 상면 면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설명을 했고, 당직근무자께서는 감사하게도 신분증을 확인하고 숙직실을 내어주셨다.


면사무소의 숙직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안식처였다.


게다가 길에서, 그것도 생전 처음 만난 내게 감사하게도 만두와 과일을 주신 아주머니까지...


그 순간 나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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