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Jan 09. 2024

어디에나 길은 있다는 말

2002년, 나는 셋째 아이 육아휴직 3년 후 사직서를 썼다. 체력이 약한 나는 그냥 내 세 아이 키우는 거에 만족하며 살기로 결정을 했다. 귀한 남의 자식을 키우는 교사라는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건 큰 '죄'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직서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던 연구부장님은, 계속 나를 말리고 계셨다. 애들 잘 가르치는 채 선생 같은 사람이 학교를 그만두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며 농담까지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에 연구부장님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서류가 잘못되어 다시 써야 하니, 학교에 나오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도장을 챙겨 다시 연구부장님을 만났는데, 거기에는 복직 신청서를 쓰고 있는 동료 교사가 있었다. 같은 교대를 다니면서는 몰랐지만, 학교 근무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연구부장님은 이것도 하늘의 뜻인 것 같다고, 이 친구처럼 빨리 복직원을 쓰라고 재촉하셨고, 난 그 두 사람의 권유에 넘어가 복직원을 쓰고 말았다. 그리고 5년을 더 근무하다 학교를 완전히 떠난 것이다.


그 친구와 '율곡 연수원'이란 곳으로 복직 교육을 받으러 갈 때, 친구 남편의 차를 타고 갔다. 수원에서 서너 시간 걸리는 곳이어서 캄캄한 새벽에 그곳을 향해 출발했다. 내 친구는 키가 좀 큰 편이었는데, 그 남편은 키가 좀 작았고, 인상이 굉장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부부는 결혼을 좀 늦은 나이에 했지만 아이 셋을 쪼르르 낳았고, 난 첫째와 막내의 터울이 아홉 살이나 되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친구가 가끔 말해주던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다. 친구보다도 더 정스러운 남편으로 인해 가정은 늘 재미있고, 따스한 느낌이었다. 연애 기간에도 피곤한 애인을 위해 한약을 지어준 남자였으니, 얼마나 다정다감한 남자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친구가 해준 여러 가지 말 중에서 내 가슴에 날아와 콕 박힌 것이 하나 있다. 그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는데, 이 남자는 모르는 곳을 향해 가면서도 항상 자신감이 넘쳐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디에든 길이 있어. 그래서 난 겁이 나지 않아."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 말은 비단 운전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석 같은 말이 아닌가! 내가 전근을 가고, 학교를 퇴직하고, 그 사이 전화번호도 바뀌고, 어느 한 날은 전화번호가 통째로 날아간 때가 있어서, 그 친구의 연락처는 없지만, 난 믿는다. 그 부부는 인생을 정말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걸.

이전 29화 내 무의식의 한 조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