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나는 교사였고, 학년 부장이었다. 한 여교사를 태우고 출근을 하는데, 내가 차를 엉뚱한 곳에 세워놓았고, 거기서 만난 동 학년의 다른 교사들과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월요일 직원회의가 8시 반인데, 계속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설정이 좀 웃기다 ㅎㅎ). 시계를 보니 바로 출발을 해도 회의에 늦을 시간이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잠이 깼다.
교사로 근무를 하면서 학년부장을 딱 한 번 한 적이 있다. 나의 마지막 학교였는데, 전근을 가서 6학년 부장을 맡았다. 예전 학교에서 '건강이 좋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잘하는 교사'로 관리자에게 미움은 받고 살지 않았는데, 전근을 오면서 내 건강 상태를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그 꼬리표를 떼기 위해 6학년 담임을 하면서, 몸이 좋지 않은 날은 퇴근하면서 동네 병원에서 작은 링거주사를 맞곤 했다. 그래도 잘 버텨나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달 뒤 발생했다. 교무부장님이 교감 연수를 끝내시고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셨는데, 갑자기 말기 암으로 사망을 하신 거였다. 매일 일찍 출근을 하셔서 교무실 앞을 빗자루로 쓸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시던 마음씨 좋은 선생님이셨다. 그분을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우리 6학년 부장님께서 교무부장님이 되셨고,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나를 학년부장으로 지목하셨다. 6학년 담임도 겨우겨우 하고 있던 나였는데, 표시를 안 내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셨던 거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그 힘겨운 학년부장 일을 해나갔다. 그리고 몇 달 뒤에 과로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 몇 주 동안 우리 반은 과목 전담 교사가 맡았고, 학년 업무는 동 학년 선생님들이 나누어서 척척해내어, 퇴원 후에 내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그 동 학년 선생님들을 만나는데, 그때 결혼을 안 했던 아가씨 선생님들이 지금은 두 아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직도 나를 만나면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참 예쁜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안다. 내가 학년부장으로 등장한 것은 내 교사 생활 중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고, 시간에 쫓기고 있던 것은 평생 지각을 한 번도 안 했던 나의 오랜 습관이 있어서, 그만큼 나를 초조하게 만들 만한 상황인 것이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찍 학교에 등교하던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교사가 되어서도 그 습관대로 살았다. 특히 아침 일찍 등교하는 몇몇 아이들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런 염려도 없고,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참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던 아이가 내가 학교에 일찍 오는 걸 알고는, 매일 일찍 등교해서 나랑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거였다. 그 아침 10분 정도는 오로지 자기만의 선생님일 수 있으니까.
나는 누가 뭐라고 안 해도 부지런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가 강적을 만났다. 바로 우리 시어머님이셨다. 성격이 굉장히 급하시고 윽박지르는 듯한 말투를 갖고 계셔서, 두 며느리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꽤 힘들어했다. 그래서 가족이 모여서 어디를 가려고 하면, 우리 모두는 그런 어머니의 '화'를 견뎌야 했다. 자주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다 보니 나는 그런 순간에 멘붕 상태가 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 상태는 몇 시간이 지나야 진정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머님이 편안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바뀌셨지만, 내 몸은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 일을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그런 증세가 나타난다. 요즘 내게 브랜드 네이밍 일을 의뢰한 대표님은 매우 정중하고 예의 바른 분이셨지만, 그 담당 직원의 일하는 태도가 휘몰아치듯 급히 서두르자, 나도 모르게 내 상태가 몹시 나빠졌다. 여유롭게 진행할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그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이 그랬던 것이다. 거기에다 전화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꼭 나를 테스트하는 것만 같았다. 카톡에서 대화하던 친구들까지 내게 안부 전화를 한 것이다. 난 정신을 못 차리게 허둥거리다 어머님 때처럼, 심장이 몹시 벌렁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세가 몇 시간 지속되었다. 명상 영상을 들으며 호흡을 정리하면서 점차 나아졌다.
그 모든 게 얽히고설켜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어머님을 떠올리면 그저 고맙고 그리운데, 내 무의식은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래도 내가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미움까지 함께 떠올라 불길처럼 타오른다면 많이 고통스러울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 삶의 한 조각이었으니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괜찮다, 괜찮아! 내가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