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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28. 2024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들

40년 지기의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남편과 함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친구의 작은 얼굴은 더 작아져 있었다.


친구는 너무도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말라는 아버지를 설득해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가난한 대학생이 친구들 모임에 나가는 것 자체가 사치라 생각했다던 말을 지난달에서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전문직 여성으로 지금까지 맹활약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는, 다행히 착한 남편, 착한 시댁을 만났다. 결혼 이후 친구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고 경제적 여유로움이 느껴져 더 행복해 보였다. 참으로 다행스럽고도 감사했다.


친구는 시댁 식구들과 있으면 마음이 편한데, 친정을 다녀오면 늘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먹는다고 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고, 속 끓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시어머님을 떠나보내는 친구를 보고 나도 많이 울었다. 가슴 품이 유난히 넓었던, 마음 따스했던 그 시어머님이 친구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다.


어디에서 며느리에 대한 사주를 보고 오셨는지는 몰라도, 친구에게 원래 잘해주시던 시어머님은 그곳을 다녀오신 후 더욱 친구를 아껴주셨다. 어머님이 전달해 주신 사주 내용은 이랬다.


"당신 며느리는 워낙 똑똑하여 밖의 일을 많이 할 사람이니, 집안일 신경 안 쓰도록 많이 도와주세요."


친구의 시어머님은 따로 살면서 친구네 집을 매일 왔다 가셨는데, 늘 친구에게 메모를 남겨 두셨다.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시는 분과도 협조적으로 일을 잘 처리하시곤 했다. 친구가 말했었다. 시어머님은 자기 집에 다녀가시는 걸 무척 행복해하시는 것 같다고. 내가 나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듯, 친구는 아직도 시어머님을 그리워한다.


내가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 이제는 남아계신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분들보다 적다. 내 친구처럼 우리는 남아계신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할 도리를 다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보내드리고 나서 덜 후회하고, 두고두고 가슴을 덜 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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