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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Aug 15. 2024

미국 공립 초등교실 랜선투어 (2)

교실 꾸미기에 진심인 편입니다만

지난 화에 이어 미국 초등학교 교실 안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랜선투어를 마련해 보았다. 

소모둠 테이블 

소모둠 (Tier 2 Group)은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주요 과목 (수학, 영어) 수업 후 형성평가 결과를 통해 학생 수준별로 그룹을 나누고 각각 그룹마다 다른 유인물/활동지를 사용하여 소규모 집중 학습을 진행하는 시간이다. 보통 아침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지난밤 만들었던 유인물들을 출력하고 복사하는 일로, 많게는 대여섯 그룹까지도 나눠지기 때문에 수준별로 넉넉히 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커리큘럼에서 동봉되는 학습 포스터나 유인물들은 대개 반 학생들의 특정 수준이나 학생들의 흥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료들이 많아 미국 초등학교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직접 학습지를 만들거나 아니면 Teachers Pay Teachers 같은 커뮤니티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구입한다.



학과목 게시판

미국 초등학교 교사평가에서는 시각 자료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늘 anchor chart라고 하는 학습 포스터를 만드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보통 수학, 읽기, 쓰기, 사회, 과학 등 과목별로 섹션을 구분하여 게시판을 만들고 특정 단원, 학습목표에 관련된 자료들을 게시한다.


미술 게시판과 사물함

교사의 자료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이나 그림도 게시할 것을 권고하는데 우리 반의 경우 교실 뒷벽이 너무 커서 글씨가 보이지 않으므로 미술 작품 전시 전용 게시판으로 사용하곤 했다. 오픈 사물함이라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들의 정리정돈 상태..ㅎㅎ 예전에 한 번 학교에 총기를 가져와 사물함에 두는 사고가 있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 초등학교는 어딜 가나 대체적으로 오픈 사물함을 선호하는 것 같다. 미국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라면 대부분이 믿고 있는 tooth fairy (이빨 요정)를 오마쥬 하여 cubby fairy (사물함 요정)을 만들었는데 사물함 요정이 다녀가는 매 달 첫째 주 월요일은 아주 기가 막히게 깔끔한 사물함을 볼 수 있었다. 요정을 믿는 2학년들이라니. 그 순수함이 귀여워 몇 번 요정 발자국을 남겨놓은 적도 있었는데 그런 날엔 요정을 잡겠다고 샅샅이 뒤지는 통에 하루 종일 교실이 어수선할 정도였다.  


감정 정리 공간

'생각하는 의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정이 격해진 학생을 사건이 일어난 장소나 상황에서 분리시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해 대부분 교실에 이런 작은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둔다. 벽에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포스터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대신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들이 게시된다. 교사에 따라 이 공간을 더 안락하게 꾸미거나, 호흡 조절을 도와주는 공, 모래시계, 감각 장난감 등 다양한 도구들을 준비해놓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도구들이 종종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후(^^;) 이 공간을 최대한 간단하고 목적에 맞게 구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미국 학교는 확실히 담임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어떤 가구를 사용할지부터 어떻게 배치하고 전체적인 교실의 테마를 짜는 것까지 모두 담임의 몫. 대체적으로 책걸상과 책꽂이 등 학습에 필수적인 가구들은 학교에서 제공하지만 그 외의 추가적인 부분은 모두 교사의 사비나 기증/기부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 초등학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 여교사들은 반을 꾸미는 데 사활을 거신 분들이 정-말 많으므로 만약 그런 분들과 함께 같은 학년 팀이 될 경우, 상대적으로 빈약한 나의 학급이 비교와 민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민원까진 아니더라도 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어떤 선생님 반이 더 낫더라, 나도 저 선생님 교실에서 배우고 싶다.'라는 썩 듣기 좋지 않은 말들을 일 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또한 *flexible seating (자율 좌석 배치)의 개념이 교사 평가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유행을 너머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시점에서 만약 교실에 평범한 의자들만 가득하다면 개별학습을 존중하지 않는 교사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 Flexible seating은 교실 내에서 학생들이 고정된 책상과 의자에 앉는 대신, 다양한 형태의 좌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좌석 배치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의자 대신 빈백, 요가 볼, 스탠딩 데스크, 바닥 매트 등을 선택해 앉을 수 있으며, 학습 활동에 따라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이 방식은 학생들에게 더 큰 자유와 편안함을 제공하여 집중력을 높이고 학습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습장애를 포함한 개별 필요와 학습 스타일에 맞는 좌석을 선택할 수 있어, 창의성과 협동을 촉진할 수 있다.


교사가 되기 전엔 개학을 몇 주 남기고 학교에 출근해 밤낮으로 교실을 꾸미는 교사들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막상 내가 교사가 되고 보니, 교실이 가지는 의미와 환경의 중요성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학습 분위기 조성이 학생들의 학습 참여도뿐만 아니라 행동 문제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저학년 학생들에게 안정적이면서도 탐구적인 학습 공간이 그들의 집중력, 사회성, 그리고 창의성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Pinterest를 보면 교실인지 카페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멋있고 창의적인 교실들이 아주 많다. 미국 교사들 내에서도 old school (보수적 방식)을 따르는 교사들은 그 시간에 교과 연구나 더 하라는 둥 불필요한 일에 괜한 힘쓰지 말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첫날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눈에 반짝이는 기대감을 알고 있는 교사라면 교실 꾸미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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