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 life best score)’는 골퍼들 사이에서 재미 삼아 진지하게 사용하는 표현으로 ‘여태까지 플레이한 것 중 가장 잘 친 기록(가장 낮은 스코어)’을 의미한다.
연습을 안 해서 요즘은 잘 못 쳐도, 옛날보다 체력이 떨어져서 이제는 잘 못 쳐도, 옛날에, 소싯적에 나 이 정도로 잘 쳤었어,라는 의미의 ‘내 라베는,’이란 표현은 ‘옛날에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었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라베’라는 표현을 유행어로 봐야 할지, 신조어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골프 구력이 상당한 골퍼라고 해도 필드 컨디션이나 개인 컨디션에 따라 경기가 어렵게 풀리기도 하니, 골퍼들이 ‘라베’를 이야기하는 심리가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된다.
라베의 영어 표현은 하이 스코어, 또는 베스트 스코어인데, 세계가 하나로인 시대이다 보니, 한류가 대세인 시대이다 보니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라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가 왜 ‘라베’라는 표현을 하는지 설명하면 알아듣기는 할 것이다. 경험 상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게 개떡같이 말해도 대게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왜냐면 자기들 모국어니까. 내가 개떡같이 말했을 때 “What?”이라고 되묻는 경우는 내 영어가 개떡 같아서라기보다는 대체로 정말 못 들었을 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러니 영어 할 때 상대가 “What?”이라고 해도 쫄지 않아도 된다.
'내 라베는,'이라고 할 때는 보통 필드 스코어를 의미한다. 스크린 골프 게임에서는 필드보다 비거리가 더 나온다. 스코어도 더 잘 나온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똑바로 잡고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불렀더니 팡파르가 울리며 백 점이 딱 뜨고 얼굴 없는 여자가 가수 한 번 해보라고 부추기는 것과 비슷하다. 필드 난이도도 조절할 수 있고, 방향도 조절할 수 있고, 프로, 아마, 루키와 같이 구력도 조절 가능한 스크린 골프는 어디까지나 온라인 게임의 오프라인 버전일 뿐, 라베를 얘기할 때는 스크린 골프 게임의 라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몸무게가 적었던 때를 이야기하려면 기준이 되는 시점에 대한 합의를 봐야겠지. 나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세팅해 놓고 나온 스크린 골프의 최저 스코어를 라베라고 할 수 없듯이 중학교 때 40킬로그램 나갔던 것을 말하며 나 옛날에 40킬로그램밖에 안 나갔었잖아, 완전 날씬했었잖아,라고 우기면서 안 그래도 기준이라고는 없는 대혼돈의 시대에 나까지 엉터리를 보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내가 한때 날씬했었다고 말하려면 어느 시점이 적합할까. 그리고 내린 나름의 결론, 성장이 완전히 멈춘 20대 이후의 최저 몸무게가 내 라베가 아닐까. 이 정도면 대체로 수긍하지 않을까.
키 성장이 완전히 멈춘 20대 이후를 기준으로 내 최저 몸무게는 49kg. 한참 케이를 만나 연애하고 있을 때다.(내가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더니 결혼 적령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신기하게도 예뻐졌다!) 지금보다 약 15킬로그램 이상 덜 나가던 이때는 비가 오면 쇄골에 빗물을 받고, 갈비뼈로 빨래를 할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내가 보기에도 말랐었고, 누가 보아도 말랐다고 한 마디씩 했었다.
지금으로선 나조차도 상상이 안가지만 뼈밖에 없단 소리를 듣던 때. 49킬로그램까지 살을 뺀 것은 아니었는데 그만 빼라는 소리를 듣곤 하던 때. 어디가 잘못된 건지, 어디가 잘 돌아가는 건지,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마름을 유지하던 시절. 지금은 상상도 못할 그 시절 몸무게는 49kg.
‘라이프 베스트, 라베’는 타고난 재능보단 노력을 품고 있다. 아무리 선수 같은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골프 라베를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비거리 연습을 해야 하고, 숏게임 연습을 해야 하고, 퍼팅할 때마다 왔다 갔다 하며 경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퍼팅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골프채가 무엇인지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가지 골프채를 사용해 보며 분석하고 연습해서 손에 익혀야 하며,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걸 다 해내서 마침내 라베를 만들었다고 해도 꾸준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노화가 진행되고, 체력이 떨어지면 야속하게도 라베는 멀어진다.
20대 이후 내 인생 최저 몸무게 49kg에도 내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라베가 의미 있는 이유는 타고남이 아니라 시간을 품은 노력으로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건너뛴 라베는 있을 수 없다. 노력 없이는 라베를 만나지 못한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노력해도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 ‘내 라베는 ○○야,’라고 말하면 ‘우와, 대단한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라베는,'이라고 말하면서 20대의 꿈과, 비전과, 열정을 그리워한다. 그 많던 찬란하던 꿈과 비전과 열정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꿈과 열정을 찾아 노력의 노를 저을 수 있다면 혼자서 태평양이라도 건널 텐데. 놓쳐버린 아쉬움과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자꾸 '내 라베는,' '내 라베는,'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