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요즘, 매일 아침 체중을 재는 요즘, 일주일 중 체중이 가장 적게 나가는토요일 아침이 가장 좋다!!
◎ 금비 사과 당근 라페 연어 샌드위치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것과 별개로 토요일 아침은 언제나 설레는 것 같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주방, 방에는 금비와 효자 아들이 자고 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상관없이 일찍 일어나는 케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아침 일찍 문을 연 야채 가게에 들러 복숭아, 무화과, 바나나, 샤인 머스캣 등의 과일을 사들고 오기도 한다. 어느 날은 일찍 문을 연 베이커리나 김밥 집에 들어가 아침으로 먹을 김밥과 빵을 사 오기도 한다. 평일 아침엔 모두 흩어지기 바쁜데 토요일 아침엔 방마다 사람이 있고, 방에선 금비와 효자 아들이 자고 있고, 가족이 있고, 온기가 있다.
금요일쯤 되면 나 역시 토요일 아침에 뭘 먹을지 작은 계획을 세우곤 한다. 브런치 카페에서 먹는 것처럼 먹어보자, 여행하다 들른 예상 밖의 황홀한 식당처럼 먹어보자, 어디 근사한 호텔 조식처럼 먹어보자, 나를 위해,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 토요일 아침을 계획한다. 이번 주 토요일엔 연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일찍 일어난 금비가 아침 만드는 것을 돕고 싶은지 주방으로 들어왔다. 금비와 연어 샌드위치를 만들다니, 벌써 좋은 날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날이다.
샌드위치라고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고작 한 개의 샌드위치지만 어떤 샌드위치를 만드느냐에 따라 준비할 것이 많다. 줄일 거 다 줄이고 가성비를 고려한다고 뺄 거 뺀다고 했는데, 간단하게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손이 많이 간다.
금비가 옆에 서서 아보카도 씨를 빼고 껍데기를 벗기고 예쁘게 자른다. 나는 사과 당근 라페를 만든다. 당근 라페에 사과를 함께 먹으면 사과의 달콤함과 당근 라페의 새콤오묘한 향이 환상의 짝꿍처럼 어울리는데 입맛 없을 때 정말 꿀맛을 느끼며 먹을 수 있다.
사과 당근 라페는 샌드위치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오픈 샌드위치로 올려 먹어도 맛있고, 샐러드로 먹어도 맛있다. 밥에 올려 포케처럼 쓱쓱 비벼 먹으면 간단하고 새콤달콤한 것이 맛있다. 무생채처럼, 미역 초무침 먹듯이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다.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남은 사과 당근 라페를 월남쌈에 싸서 먹을 작정으로 넉넉하게 만들었다. 사과는 부사, 홍옥, 홍로, 풋사과 등 아무거나 사용해도 되지만 요즘 제철이라 마트에서 많이 보이는 초록사과를 사용했다. 아오리 사과라고도 불리는 초록 사과는 신맛이 있어 신거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있는데 당근 라페와 함께 먹으면 신맛이 중화된다.
당근 라페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샐러드처럼 소스 넣고 쓱쓱 버무리면 끝이다. 당근 라페 소스는 간단하지만 집집마다 김치 맛이 오묘하게 다르듯 당근 라페의 소스도 취향껏 조절하면 된다.
당근 라페 소스의 기본은 홀그레인머스타드, 올리브유, 레몬즙, 설탕, 소금, 후추.
레몬즙 대신 식초를 넣기도 한다. 나는 설탕, 올리고당 대신 꿀을 넣는다. 꿀이 몸에 더 좋거나 덜 해롭거나 한 이유는 아니다. 설탕이든 올리고당이든 꿀이든 같은 당이지만 같은 단맛이라도 꿀의 단 맛은 좀 더 깊고 묵직하다. 당근 라페에 꿀을 넣는 이유는 순전히 향의 취향 때문이다.
커다란 크루아상을 반으로 가른 뒤 아보카도, 연어, 사과 당근 라페를 차곡차곡 쌓아 속을 채운다. 사과 당근 라페에 양념이 충분히 되어있어서 따로 소스를 뿌려주지 않아도 샌드위치의 깔끔한 맛이 난다. 어제 운동 마치고 곧장 집 근처 베이커리에 갔는데 저녁도 아닌 시간인데 벌써 진열장이 텅 비어있었다. 남은 것은 크루아상뿐이었다.
크루아상을 몹시 사랑하긴 하지만 계획한 통곡물 빵이 없어 난감한 와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크루아상이라도 살까, 다른 베이커리에 가볼까. 이런게 뭐라고 아주 짧은 순간, 혼자 아주 진지한 고민을 한 이유는 식구들에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통창으로 보이는 밖을 보니 피부를 뜯어버릴 기세로 오후 햇살이 쨍쨍했던 것이 크루아상을 사기로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집에서 이런 샌드위치를 먹다니!”
케이가 좋아한다. 뭘 만들어줘도 언제나 놀라고 감탄하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운 케이.
케이의 감탄과 별개로 연어 샌드위치는 요리 솜씨가 필요 없다. 손맛이 없어도 된다. 필요한 건 신선한 채소와 연어, 빵과 같은 재료뿐이다. 금손이 아니어도 재료를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미각적으로도, 미적으로도 근사한 샌드위치가 돼서 나온다.
“크루아상으로 만든 게 더 나은 거 같은데!”
금비가 맛을 보더니 평을 해주었다.
음, 음, 탄성을 하며 백 마디 말보다 맛있게 먹어주던 효자 아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곧 먹는데 심취해 있다. 통곡물빵이 없어 대안으로 선택한 크루아상이었지만 ‘크루아상으로 만들길 잘한 거 같은데’ 같은 생각을 했다.
◎ 월남쌈
가성비 때문에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있다.
월남쌈을 좋아해서 한때 월남쌈을 자주 사 먹었다. 월남쌈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대부분의 식당에선 라이스페이퍼를 리필해 준다. 월남쌈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리필한 라이스페이퍼도 부족함이 있다. 자꾸 리필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자니 미안해서 언제부턴가 월남쌈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집에서 월남쌈을 만들어 먹으면 식구들의 입맛에 맞게 채소를 준비할 수 있고,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다. 라이스페이퍼를 식탁에 넉넉하게 쌓아두고 라이스페이퍼가 떨어질 염려를 하지 않아 좋다. 가성비는 좋으면서 배가 찰 때까지 월남쌈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준비하는 월남쌈 재료의 기본은 샐러드 채소, 상추, 깻잎, 오이, 햄, 맛살, 지단, 파인애플, 고추장 돼지불고기이다. 파프리카, 당근, 새싹채소, 고수, 새우 등 장을 볼 때 눈에 띄는 재료를 그날그날 식욕에 따라 올리기도 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올리기도 한다. 집에서 먹는 거니까, 집밥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재료, 식구들이 좋아하는 재료 다 올린다. 여러 식당의 월남쌈이 한자리에 모여 경합하는 것처럼.
월남쌈과 비슷한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구절판이 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싸먹는 점이 비슷하지만 월남쌈은 익히지 않은 채소가 어울리는데 반해 밀전병에 나물과 고기 등을 싸먹는 구절판은 익힌 재료가 어울린다.
익히지 않은 생채소가 어울리는 월남쌈이지만 고추장 돼지불고기, 햄, 맛살, 지단을 빼놓을 수 없다. 채소와 어우러져 씹히는 단백질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햄을 준비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데 햄을 자른 뒤, 끓는 물에 10초-20초 정도 데쳐 기름을 살짝 제거해 준다. 햄을 데치고 난 뒤의 뿌연 물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햄은 이런 거구나.’
월남쌈을 먹을 땐 익히지 않은 채소를 충분히 먹게 되어 월남쌈을 먹을 때마다 이만한 건강식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투명하고 얇은 라이스페이퍼의 칼로리가 뜻밖에 낮지 않긴 하지만,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씹고 있으면 여전히 충분한 건강식이라고 생각한다.
라이스페이퍼는 무척 얇기 때문에 한 번에 너무 많은 재료를 넣고 싸기보다는 몇 가지의 재료를 넣고 얌전하게 싸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떤 재료를 넣고 쌈을 싸느냐에 따라 맛의 황홀함이 달라진다. 자극적이지 않은 재료들의 맛의 조화를 사랑한다. 피넛 소스, 월남쌈 소스, 칠리소스, 피시 소스, 각종 샐러드드레싱 등 어떤 소스를 곁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를 사랑한다. 입안을 채우는 다채로움이 좋아서 월남쌈은 앞으로도 즐겨 찾을 우리 집 가성비 요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