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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Oct 24. 2021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독서에세이 

공지영 작가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로 처음 만났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성이 모두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일을 생계로 하는 공지영 작가의 혹독한 인생을 그 책과의 만남으로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의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내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소설로 유명한 공지영 작가이지만 나는 그녀의 진솔함이 가득 묻어나는 산문집이 더 좋았다. 자신의 상처와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메시지를 풀어내는 담담함이 참 좋았다.     


2020년 가을. 그녀가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그녀가 처한 현실과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라고 프롤로그에서 숨김없이 소개한다. 스스로 죽어야할 30가지의 불행한 이유를 지닌 사람이라고 가감 없이 자신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는 작가 후기에서 당당한 목소리로 당부하며 힘차게 인사한다.     


“홀로 있는 시간의 힘으로 

나는 삶의 작은 언덕을 넘는다.

모두들 행복하시라. 

바로 오늘! 바로 지금!

한 번뿐인 당신의 생이 가고 있으니.”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 섬진강 가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그해 세 번째 이혼 후 빚더미에 오른 7년 경력 단절녀가 되었다. 가장 많은 단행본을 팔았던 베스트셀러였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며 글을 썼다.     


육아를 마친 그녀는 서울을 떠나 섬진강 변의 70평 정도의 대지에 15평의 건물인 시골집을 장만했다. 자신의 우울증에 가장 강력한 치유제가 되었다는 햇살 그리고 모차르트 어쩌면 섬진강이 아슬아슬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 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하루 종일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을 누렸다. 홀로 머무는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생각의 암반들을 발견해 냈다. 마음의 암반에 이를 때마다 진실한 아픔은 통증이 되어 밀려 왔으나 그 이후에는 자유로움을 얻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마도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한 번도 

진짜 행복하기를 원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행복이 아침에 해가 떠서 

내 창문 안으로 그 빛을 비추듯 오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행복하기를 원했던 

적이 있기는 하는 것일까?”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혼자 머무는 시간을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 보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불행한 과거들을 헤아리며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좋은 책들을 찾아 읽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나서 그녀는 모든 훌륭한 분들의 행복해지는 비결이 아주 단순한 몇 가지 단어들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단어를 기억해 두라고 공지영 작가는 당부한다.

‘먼저 나 자신’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그녀는 고민이 되었다. 공지영 작가는 지치고 늙고 불행하고 어두운 그녀 자신에게 힘겹게 입을 열어 고백한다. 그리고 매일 한문장을 더 넣어 연습한다.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너!”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나아지기를 원합니다.”     



마음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그녀는 육체를 돌보고 꾸미는 것을 제안한다. 육체는 우리 마음의 집이라고 소개한다. 마음과 나라는 존재의 어려움은 놔두고 육체와 집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일어나자마자 잘 씻고 화장을 하며 악세사리로 자신을 아름답게 꾸몄던 소소한 일이 뜻밖에도 그녀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나이가 들수록 식욕이 좋아지는 스트레스를 그녀는 배고프면 먹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조금 기다리는 것으로 협상을 해낸다. 식욕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마르든 살찌든 이제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장미도 채송화도 백합과 모란도 있는데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말할 수 없듯이 ‘나는 나 자신으로 아름다울 뿐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선포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모든 것이 변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만남들과 생각들 그리고 시선들에 대하여 공지영 작가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선과 질문을 던지며 성찰한다. 섬진강의 윤슬들을 매일 바라보며 무의식 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는 마음의 암반을 발견하는 작업을 해낸다. 고름을 짜내기 위해 종양에 상처를 내는 것처럼 생각의 암반에 이르면 몹시 아팠다. 지진 같은 충격이 오기도 했다.     


때로는 위선이 편하고 훨씬 더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똬리 튼 거짓과 위선을 적발해 내야하며 스스로의 거짓들을 찾아내야 한다 강조한다. 거짓과 위선은 신발속 돌멩이처럼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고 성장을 저해한다. 멈추어 서서 돌멩이를 빼내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소소한 일상에서 거짓과 위선을 골라내어 버린다. 고름을 짜내는 아픔의 통증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 낸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그녀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살려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쳐 준다.     

“차가 본래의 맛을 내기 위해서, 

콩이 된장이 되기 위해 우리는 

가끔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의 형상들을  

잃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효차는 비닐을, 콩은 곰팡이를 

뒤집어쓰고 일정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고통뿐인 듯 느껴지는 그 시간들을 

잊지 마시기를, 나비가 되기 위해 벌레는 

자신의 몸을 마비시켜 번데기가 되어야 했고

꽃은 마치 죽음과도 같은 추락을 맞아야 

했다는 것을.”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단 저 아픔을 껴안고 생의 모퉁이를 돌려고 마음먹고 나면 또 다른 신비의 커튼이 열린다는 것.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고통으로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친구란 이 세상이 당신을 다 버렸을 때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이다.

제게는 그런 친구가 있어요.

바로 여기 있는 이 책들,

조용한 시간의 기도들 그리고 나 자신.

그렇게 내가 나 자신의 친구가 된 이후

나는 진정으로 다른 이들과 우정을 

맺을 수 있었어요.”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외롭게 머무는 시간을 통해 그녀의 마음에 퇴비가 쌓였다. 

비옥한 땅에서 꽃이 피어났다.     


누군가 자신을 절벽으로 밀었는데 그때에야 비로소 날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 생은 기필코 우리를 절벽으로 밀지만 추락할 것인지 날아오를 것인지는 내가 선택한다는 것. 불행한 삶에서 비롯된 오랜 통증을 이겨낸 공지영 작가의 경쾌한 결론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녀가 산문집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글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너무 비슷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쁜 땅을 불행을 뚫고 나와 푸른 나무로 우뚝 선 그녀의 당부가 메아리가 되어 전해진다. 그녀가 손꼽는 카잔차키스의 글귀가 윤슬처럼 반짝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든 불행을 살아내는 것이다.

빛이란 무엇인가,

온갖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 친구들 부디 행복하길,

부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해지기를.     

너희들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너희들의 형제가 어떤 사람이든,

네 과거가 어땠든 네 남편이 무엇을 하든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많이 울었고 

얼마나 외로웠고 얼마나 아팠는지 간에 

오늘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행복을 만끽하기를!     


우리는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리라!     

행복하라! 오늘!”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불행을 담담히 살아내는 것이 행복이다.

내 삶에 차오르는 모든 어둠을 찬찬히 응시하는 것이 빛이다.


내 부모와 형제, 살아온 과거가 어떻든

현재의 남편이 어떻든 

불행이 얼마나 나를 짓밟았는지 상관없이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오늘의 행복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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