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 과거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추억의 사람들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래전 스승, 친구, 이웃 등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눈물 가득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깊은 고마움이 있었고, 보고 싶었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가 만약 저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 누구를 찾을까 상상해 보곤 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나를 처음 교회로 전도해 주신 약국 약사 아주머니였다. 시간이 오래 지나 살아계신지 알 수 없지만 살아계시다면 꼭 한번 만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두 번째로 떠오른 사람은 3년 동안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던 군바리 친구다. 훈련소에서부터 시작된 편지 왕복이 병장 생활을 마치고 제대할 때까지 이어졌으나 사진으로만 그를 보았다. 나를 아카시아라 부르며 매주 편지로 소식을 전해준 군바리 친구는 결혼해 잘 살고 있는지, 기회가 된다면 얼굴 한 번은 꼭 보고 싶은 1인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우연히라도 보고 싶은 한 사람 더 있다.
이름의 이니셜도 나와 같은 SJ였던 친구. 그의 긴 기다림 끝에 몇 개월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나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 준 고마운 남자 친구였다.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SJ가 군대에서 몇 번 편지를 보냈다. 생각지 못한 나를 향한 애정과 호감이 담긴 편지였다. 답장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나는 별로 그에게 호감이 없어서 편지를 무시하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편지가 그 후로도 몇 번 왔던 기억이 있다.
몇 번의 편지가 오더니 그가 제대를 하고서 나를 찾아왔다. 청년이 된 그는 키가 나보다 훌쩍 자라 있었고, 여전히 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면서 식어지지 않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오랫동안 좋아해 왔고, 이제는 남자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간절히 부탁을 했다. 나름 간절했던 편지에 한 번도 답장을 해주지 않은 것이 그를 직접 대면하니 많이 미안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나를 좋아했다는 그의 마음이 군대를 제대하는 시간까지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간절한 눈빛으로 고백하는 그를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다. 그를 향한 이성적인 호감은 없었지만 그의 깊은 마음이 고마워서 사귀어 보자고 허락을 했다.
SJ는 그날 환호를 지르며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를 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
“우리 이제 오늘부터 사귀는 거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집까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SJ는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진학할 수 있는 많은 대학들을 내려놓고 내가 다니던 대학교로 입학을 했다. 여자 친구가 다니는 학교로 대학 진학을 한 그를 보고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입학 후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SJ는 나의 친절한 보디가드가 되었다.
학교 식당에서 저렴한 식권으로 점심을 먹던 나를 SJ는 매일 학교 밖 식당으로 불러 맛있는 점심을 극진히 대접하려고 애를 썼다. 학교에서 집이 거리가 멀어 버스 환승을 해야 했는데 만원 버스를 타고 하교하다 버스가 복잡해지면 SJ는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놀이공원 한 번을 못 가본 나를 SJ가 처음 첫 데이트로 놀이공원에 데리고 갔다. 놀이공원 데이트를 하며 처음으로 놀이기구를 탔다. 넓은 놀이공원을 SJ와 함께 하루 종일 걸었던 첫 데이트 추억을 잊을 수 없다. 2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우리 부모님이 한 번도 데려가지 않은 놀이공원에 나를 처음 데려왔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이었다.
SJ와 화이트 데이에 타이타닉을 보러 갔다.
영화를 보고 늦은 저녁 극장을 나오는데 3월에 함박눈이 내렸다. 3월의 타이타닉, 화이트데이, 함박눈 잊히지 않는 한 폭의 풍경이 되었다. 주말이면 SJ는 열심히 알바를 했다. 아마도 나와의 데이트 비용을 넉넉히 준비하려는 이유였다.
SJ와의 데이트가 쌓여갈수록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을 다루듯, 가장 존귀한 이를 대하듯 나를 애정 하는 그의 마음이 20년 동안 애정결핍으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에게 사랑과 애정을 느끼게 하는 첫 만남이 되었다.
위로 누나만 둘 있는 SJ는 막내로서 부모님과 누나들에게 많은 애정과 사랑을 받은 친구였다. 그가 평생 부모님과 누나들에게 받은 사랑을 애정결핍 가득한 여자 친구에게 흘려보내 주었다.
SJ는 여자 친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여자 친구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사랑이 무엇인지, 애정이 어떤 것인지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 SJ는 사랑과 애정과 따뜻함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어주는 첫 스승이었다. 내가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까 그를 만날 때마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렇게 애정과 매너가 넘치는 남자 친구였는데 SJ와의 만남은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SJ의 넘치는 애정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이유는 서로의 소통이 깊어지지 못한 이유가 컸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자주 했지만 SJ와 서로의 속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데이트를 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때가 많았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우린 다양한
유형의 사랑을 매번 다른 강도로 경험한다.
다만 우연히 시작된 사랑을 꿋꿋하게
이어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서로의 마음속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 내밀한
감정을 짐작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꽃은 특정한 토양과 기후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정교 함이라는 땅 위에서 노력이라는
비를 맞으며 튼실하게 자라는 꽃이 아닐지..”
《마음의 주인》
사랑이 싹트고 점점 깊어지려면 서로의 마음속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 내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며 자신을 오픈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부끄러움과 연약함을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신뢰가 자라야 한다. SJ는 나에게 좋은 선물과 극진한 대접을 해주려 애를 썼지,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어쩌면 좋아하는 감정이 커서 나에게 멋있는 남자 친구로만 기억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또, 조숙했던 나에게 동갑 남자 친구이라는 한계가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마음과 감정이 나눔 확장이 안되니 데이트도 시간이 갈수록 공허해졌다.
하지만, 이별의 결정적 동기는 사랑이 나를 소유하려는 집착으로 점점 변해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사랑은 소유하기 위해 날개를 꺾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날아갈 힘을 주는 자유를 선물해 주는 사랑을 원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나를 구속하고 제한하려는 집착스러운 애정을 나는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기주 작가의 말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가 상대방에게도 사랑이 되어야 함을 SJ와의 만남을 통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