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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05. 2020

몽쉘( Mon cher )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우리 정부가 마스크를 지급한 것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인터뷰에 응한 프랑스인 노병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마스크도 없는데 전쟁 발발 70년 후에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우리를 생각한다며 감동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 프랑스인 참전용사는 출생 직후 버려진 뒤 보육원에서 자라며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었고, 고아로서의 고된 삶을 견디다 못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18살에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전쟁 중 참호 속에서 죽은 동료들의 시신이 썩어가는 냄새와 한겨울에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던 지독한 추위가 늘 생각난다고 했다.


"다들 거기 가면 죽을 거라고들 했지만 난 아무 상관없었어요."


이 기사를 보고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 티슈를 잡아 댕겨 몇 번이나 코를 풀었다.

다들 거기 가면 죽을 거라고들 했지만 난 아무 상관없었어요.

나는 형사사건 국선변호만 하는 변호사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다.

나는 내게 이 인터뷰 기사 주인공과 비슷한 말을 한 피고인들이 떠올랐고,

이 담담한 인터뷰 기사 주인공의 청춘이 가엾고 마음 아팠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생략한 많은 사연과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내가 만난 피고인 중 어떤 사람은 50대였는데 주소가 법무부의 한 갱생시설이었다. 생계형 절도가 누적되어 교도소 생활까지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부모님이나 형제가 없느냐고 하니 고아로 자라서 가족은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어릴 적 기억에 삼촌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한참 기차를 타고 내린 곳에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 놓고서는 사라졌다고 한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그곳이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이었으며, 며칠을 기차역에서 노숙하다가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혼이었고 그의 삶은 이리역에서 멈추어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성장하지 못한 채 몸만 자라고 노화되어 이제 50이 되었다.    


그래도 범죄자 아니냐고 어따 대고 참전용사의 삶에 비유하냐고 하겠지만, 가엾고 불쌍한 인생이라는 점에 진입장벽이 어디 있나. 이 사람도 50살에 스팸이나 훔치는 좀도둑으로 살고 싶었을까. 교도소 가고 싶었을까.     

그는 이번에는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되어 내게 왔다. 대출을 받아 방을 구해보려고 하다가 대출상담직원이 대출받으려면 체크카드를 먼저 보내주어야 한다는 말에 체크카드를 양도했다. 체크카드를 받은 보이스피싱 일당은 피고인에게 연락을 끊었고, 그 카드로 누군가를 속여 돈을 받았다.

   

그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다 보니 국가로부터 상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오래전 화재 현장 옥상에 목숨 걸고 올라가 폭발 위험이 있는 가스통을 제거한 공로로 용감한 시민상 같은 것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수많은 인명을 구한 사람이었다.

불길에 가족을 구하려고 뛰어든 것도 아니고 우연히 목격한 화재현장에 몸을 날린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상투적으로 물었다.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가 담담하게 한 말에 움찔했다. 그는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으니 사람이나 구하자는 마음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런 그가 왜 칭찬받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겠나.


나는 그가 곧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죄 주장해봤자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는 엄벌하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는 고의가 없다는 주장이 좀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운이 좋으면 감당할 수 없는 벌금에 노역장 유치되느라 다시 구치소에 수감되든가. 징역형을 받아 수감되든가. 이러나저러나 깔때기처럼 그가 갈 곳은 구치소, 교도소다.    


작은 상자에 개미를 넣는다.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손으로 개미를 잡아 통에 넣는다. 개미는 또 탈출한다. 겨우 밖으로 나왔더니 또 통에 넣는다.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탈출해본다. 잡아서 또 통에 넣는다. 이번엔 좀 더 뒤에 탈출해 본다. 탈출해서 다른 방향으로 전력 질주한다. 또 잡아서 통에 넣는다. 개구쟁이의 관심은 개미가 배를 하늘로 향했을 때 끝난다. 죽은 것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이 그래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의 제약 때문에 지능이나 성실이 무의미한 경우도 있다. 사람이 반듯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한다면 그 이면에는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에게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었을까. 심한 불운이 계속되면 영민함도 사라질 것 같다. 그는 내가 변호인으로서 별로 할 것이 없었다. 탄원해 주는 가족도 없고, 심지어 교회도 다니지 않아 목사님의 탄원서도 들어오지 않았다(고아 출신이고 가족이 없어도 가끔 개척교회 목사님이 눈물로 탄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 교회 다니면.).    

 

그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은 기록이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치아상태가 좋지 않다. 먹는 게 사는 것의 반절은 차지하는 것 같은데 먹는 것에 심각한 제약을 주는 상태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가 듬성듬성 빠져있었고, 말하다가 가끔씩 의식적으로 입을 가렸다.    


선고기일 그는 법정 구속되었고 나는 얼마 뒤 다른 피고인들을 접견하러 구치소에 가게 되었다. 그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데, 구치소 민원실에서 넣을 수 있는 음식은 죄다 잘 씹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의 수용자 번호로 넣은 물품은 몽쉘이었다.     


 mon cher. mon 은 나의! cher는 친애하는, 사랑하는, 소중한 이라는 뜻이란다.

그가 이 과자에서, 최소한 나는 그의 앞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느끼고 모래만 한 힘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고인 000가 아니라,

1970년에 이 세상에 온 한 사람에게 몽쉘의 마음으로 몽쉘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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