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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Feb 03. 2021

보호는 종료되었지만 홀로 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

(보호종료아동)

만 18세가 되면 보육 시설을 나와 자립하는 청소년들을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른다. 아동복지법상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민법상 성년은 만 19세이다.

보호종료아동은 성인이 되기 전에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한 때 보호 종료 아동이었던 40대, 50대를 변론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자라서 자신이 어떤 경위로 보육원에 가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이 기차역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버리고 떠난 일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의 등록기준지(본적)는 모두 보육원 주소지로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보호 종료 아동이었던 20대를 여러 명 변호했다.

부모님이 존재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보육원에 맡겨져 자란 사람도 있었고,

아예 부모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미성년자는 어른 없이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휴대폰 개통을 포함한 여러 가지 법률행위와 계약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줄 어른이 없을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품행이 나쁜 어른들에게 기대는 경우도 있고,

비행이나 범행에 연루된 사람의 도움을 받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얼마 전 이제 갓 성년이 된 여자 피고인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피고인을 홀로 키우다가 초등학교 때부터는 보육시설에 맡겼다고 한다.

피고인은 아버지가 있었지만 보육원에서 성장했고, 만 18세가 되었을 때 보육원에서 나왔다.    


가끔 아버지가 보육원에 오기도 했기 때문에 피고인은 자립하게 되면 어른인 아버지를 좀 더 자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제는 아버지가 키워도 되지 않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양육의 부담을 덜게 되므로 어쩌면 돈독한 부녀간의 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피고인이 보호 종료될 무렵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피고인은 자신이 같이 살자고 할까 봐 아버지가 두려웠거나 부담스러워서 연락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은 다른 보호 종료 아동들처럼 미성년인 상태에서 월세 계약을 하고, 주민센터에 확정일자를 받으러 가고, 필수적인 조리도구와 가전을 구입하고 휴대폰을 개통하고.. 많은 일을 스스로 해야 했다.    


자립정착금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5백만 원은 보증금과 가전을 구입하면서 금방 동이 났고, 피고인은 아버지의 소식을 모른 채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지냈다.


그러다가 범죄에 연루되어 구속이 되었다.


이 피고인은 청소년기 소년보호처분 전력이 없었고,

자립 후 열심히 교육받아 여러 개의 자격증도 취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2심인 항소심 변호를 맡게 되었는데,

기록을 보니 1심에 피고인 아버지가 제출한 탄원서가 있었다.    


피고인은 20대 초반인데, 아버지도 40대 초반이었다.


일찍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나 아이 엄마는 떠나고 

홀로 여자 아이를 7년간 키우던 아버지의 고단한 20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를 잠시만 보육원에 맡기고 다시 데리고 가려고 열심히 일했지만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서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살았던 이야기와

아이가 보육원에서 나오면 함께 살려고 했는데,

자신이 타인에게 명의를 대여하고 불법적인 사업에 관여가 되어 구속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차마 아이에게는 알리지 못했지만 자신은 아이가 자립할 무렵 실형을 복역하고 있었고,

자신이 출소했을 때는 아이가 구속되어 있었다고.


이 모든 것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며

아이가 죗값을 치르고 출소하면 둘이 함께 반듯하게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피고인을 접견했을 때 피고인은 모두 자백하고 인정하는 것이라서

사건 변론에 대해서 특별히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피고인이 나에게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1심에서 아버지가 제출한 탄원서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탄원서의 내용을 아는 나는 몹시 당황했다.    

피고인이 설명하기를 아버지가 어느 날 면회를 왔고,

그동안 멀리서 힘든 일을 하느라 연락을 못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1심 변호인을 통해서 아버지가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들었고,

아버지의 탄원서 내용은 모른다고 했다.

 

고민하다가 

그다음 접견 때 탄원서를 복사해서 들고 갔다.


탄원서를 받아 든 피고인이 조용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눈물을 훔치며 탄원서를 다 읽은

피고인은 나에게

변호사님 이거 저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했다.    


나는 교도관에게 알리고 구치소 내부 절차에 따라 피고인에게 교부했다.    


아버지의 탄원서를 접지 않고 그대로 품에 안고 돌아가는 피고인의 작은 등을 보니

피고인에게는 '돈이 아니라 어른이 필요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많은 보호 종료 아동들이 자립하여 사회로 나온다. 그중에는 한 때 보호 종료 아동이었으나 현재는 성공한 사업가, 연극배우, 공익단체 활동가들도 있고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회사원이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직업상 보호 종료 아동의 불운한 사례를 보기 때문에 소수의 보호 종료 아동이 처한 상황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부모가 키우지 못한 아이들을 사회가 함께 키워나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본다.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케어센터 청포도.

http://www.jaripcare.com/
위 커뮤니티는 보호 종료 아동의 자립을 지원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도록 멘토지원과 교육도 한다. 위 커뮤니티를 통해서 보호 종료 아동에게 주방물품 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할 수 있으며, 후원 마켓에서 물품구매를 통해서 후원을 할 수도 있다.

모바일앱 「자립정보 ON」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복지시설이나 가정위탁에서 보호가 종료되는 아동이 보다 쉽게 자립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 「자립정보 ON」을 출시했다. 자립정보 ON은 영역별 자립정보로 구성되어 소득, 주거, 금융, 진학, 취업, 건강, 자립 선배 사례 제공, 멘토, 기타(제도)로 구분하여 핵심 정보를 확인하고, 검색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자립정보 세부 페이지에서는 자립정착금, 자립 수당 등 자립 정보와 위치기반의 주거지원정보 찾기 기능을 지원한다. 또한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청년센터 API 정보를 연결하여 청년 대상 취업지원, 창업지원, 주거·금융, 생활·복지, 정책참여 등의 관련 정보를 상시 제공한다.
[출처] 아동권리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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