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진곤 Aug 13. 2024

회사에 충성하게 만든 리더의 한 마디


28살, 군대를 전역하고 취업 준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며 상담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온라인 문의 답변]과 [오프라인 수업 상담], [수업 결제]와 간단한 [시설 관리]가 전부였죠.



당시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0730~0800 학원 오픈

0800~1000 수업 1

1030~1230 수업 2

1230~1300 점심

1300~1400 스터디

1400~2000 아르바이트

2000~2200 수업 3

2200~2230 학원 마감

학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80분 정도였으니 '살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렇게 열정을 태울 수 있었던 건 물론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학원 직원들의 에너지가 좋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공감과 존중. 말로는 쉽지만 업무를 하면서 제일 어려운 두 개의 단어가 존재하는 곳이었죠.



회사 소통의 문화는 리더가 결정합니다. 이끌어가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소통 방식은 결정되죠. 효율과 성과를 우선으로 두는 대표라면 말하기도 성과에 적합한 대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을 뽑기 때문이기도 하죠. 성과보다 관계와 감정을 먼저 둔다면 조금은 느리지만 마음을 지켜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듭니다. 제가 있던 곳은 후자에 가까웠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연매출이 대략 10억이었던 규모였음에도 강사를 제외한 직원은 4명이었습니다. 그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막내 저에게 어느 날 대표님이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학원 운영을 담당하는 자리를 맡아줄 수 없겠냐는 말이었습니다. 직책은 운영팀장이었지만 실제 하는 일은 학원 실장 역할이었습니다. 부담스러웠지만 젊음의 패기로 '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3일의 인수인계 후에 팀장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학원 상담 자리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팀장이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업무 적응에 몇 달은 밤샜었습니다. 협력업체와 연락, 교육청 자료 확인, 학원법 공부와 수강생, 매출관리... 추가로 상담 아르바이트생 교육과 대표님 서포트까지... 군인 정신이 아니었으면 당장 그만뒀을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해나갔습니다.



그러다 일이 터졌습니다. 학원에서는 필수로 들어야 하는 보험이 있습니다. 차를 구매하면 차량보험을 필수로 드는 것처럼 '학원배상책임보험'이라는 보험이었고 1년 단위로 갱신을 하는 보험이었습니다. 보험을 들지 않았을 때는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뉘앙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갱신을 하지 않았고 고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손이 벌벌벌 떨렸습니다. 잔잔한 실수가 아니라 300만 원을 내야 하는... 한 달 월급에 가까웠습니다. 뭐라고 보고를 올려야 할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예상했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야이...!!! 정신 차려!"처럼 화를 내는 것이었고 하나는 "하... 신경 좀 쓰지 그랬어. 어쩔 수 없지..."였습니다. 군생활하면 당연하고 첫 번째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서 예상했지만 지금까지의 대표님의 패턴으로 봤을 때는 두 번째 반응이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표님 업무실에 노크를 했습니다.




"대표님..."

"어, 무슨 일이야?"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

"?"

"학원배상책임보험 갱신을 안 해서 과태료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만데?"

"300만 원입니다."

"아고...

이제 그의 예상했던 반응이 나올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 얼마나 당황했을까"

"?"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학원 막 시작했을 때 깜빡해서 갱신 못할 뻔했어서 보험사에 전화해서 빌면서 도와달라고 했었어ㅎㅎ... 신경 쓰지 마. 내가 전화해서 처리해 볼게. 마음 쓰였을 텐데 말 꺼내느라 고생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사람에겐 성과에 대한 철저한 보상이 될 수도 있겠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복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보상이나 복지보다 중요한 건 공감과 존중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의 충성을 맹세했고 바이러스로 학원이 문을 닫지 않았으면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회사의 목적은 결국 이윤추구'라는 말을 동의하진 않지만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도 직원의 충성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짐을 덜어주는 리더의 태도는 책임이자 필요 역량일 겁니다.


이전 01화 회사에서 소통하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