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나의 집엔 울타리에 기댄 해바라기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
집에 해바라기가 많은 것은
뭐, 다른 이유가 아니고
사람들이 나의 집을 ‘해바라기 집’이라고 불러주길 바라기 때문이야.
B-612라는 주소보다
가오리에 있는 ‘해바라기 집’ 이 더 멋지지 않아?
아참 B-612는 어린 왕자의 별 주소야.
아무튼
보아뱀 속에 있던 호기심 가득한 코끼리 눈동자 기억해?
순진한 눈동자
거대한 코끼리
코끼리는 뚜벅뚜벅 걸어서
깊은 산속 해바라기 집 울타리 옆에 서있는 어린 공주를 알아보게 될 거야.
-안녕?
-안녕?
-난 어린 공주야.
-난 코끼리야.
-넌 보아뱀을 아니?
-응, 보아뱀은 한 때 나의 동굴이었어. 축축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은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한 걸음 걸었거든. 그 뒤엔 뚜벅뚜벅 걸었어.
-참 다행이야. 나는 네가 좋아졌어. 기다란 코도 멋진 걸. 그 코로 내 해바라기를 세워줄 수 있겠어?
-그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야.
아저씨가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할 때면 난 이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혼자 웃곤 해
아저씨는 이런 내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요즘 시크릿이 유행이야
부자 되는 법
친구 사귀는 법
예뻐지는 법
자존감이 높아지는 법
끌어당기는 법
이 법 저 법
난 그런 법을 좋아하지 않아. 법대로 하라지.
그건
어린 왕자의 주소를 소행성 B-612라고 만들어버린 엉뚱한 어른들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력이 부족해서 말랑말랑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법칙들이거든.
어른들은 숫자만큼이나 법칙을 좋아하는 것 같아.
K
아저씨는
상자에 양을 소중히 안고 떠나버린 어린 왕자를 그리워했어.
어린 왕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림물감과 연필을 샀다고 해.
하지만
상자 속에 있는 양을 그리지 못해서 안타까워했어.
그 양은 어린 왕자만의 양이었으므로
볼 수 없었던 거야.
분명한 것은
상자 안에는 어린 왕자의 양이 있다는 것을 아저씨는 굳게 믿었어.
어린 왕자의 상자는 누구의 법칙도 따르지 않았어.
원하는 것은
더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야.
K
기적은 찾는 것이 아니고,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고,
법칙을 따르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이미 있는 것을 소중히 간직하는 코끼리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아
보아뱀 속에서 한 발 내딛기만 한다면
초원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었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