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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n 24. 2024

벌거벗은 임금님

벌거벗은 임금님



왕이 행진해요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몸을 벗어버린

위대한 왕


아이들이 함께 달려요

사람들이 손뼉 쳐요

제단사가 웃어요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진실

왕은 보이지 않는 옷을 사랑해요


왕을 벗어버리고 옷이 행진해요

그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왕을 사랑해요

사랑이 거리에서 몰려다녀요


성은 높고 고요해요

문지기는 하품을 해요.





나는 몇 가지 돈 버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몇 푼의 돈을 신성하게 모셨다.

빚을 갚고 아이 유학비용을 대면서

나중에, 나중에, 글 쓰며 살아야지...라고 곱씹으며 살았다.

나는 일을 사랑하였으나,

일은 내 삶을 사랑해주지 않았다. 나를 아껴주지 않았다.

몸은 늙어갔다. 진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글을 써도 되는데 사랑이 시시해진다.

사랑이 없는 글이 글인지 묻고 싶지도 않다.

사랑은 존재한 적이 없다. 아니면 너무나 많다.

보이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그토록 애썼던 날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글을 억지로 입으려 한다.

잠시 멈추어 하품을 해 본다. 

어쩌지?

벌써 시들어야 한단 말인가. 꽃잎도 없이. 사랑도 없이. 바람도 없이

될 대로 되라지, 차를 한 잔 마셔보기로 한다. 

몇 자 휘젓다 보면 우쭐해지는 시 한 줄 건져지지 않을까.

가난은 시를 쓰지 못하는 날들에 대한 변명이었다. 

세상을 두루 돌아온 아이는 전화기 너머에서 세상이 싫다고 중얼거린다.

벗어던진 내 몸이 할 소리는 아니다.

어쩌라고.


텃밭에서 건진 몇 가지. 먹을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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