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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n 12. 2024

우대리


삼재 들던 해 만난 그는

이마에 흉터가 깊은

눈매 매서운 스물다섯이었다

손에 아스피린 몇 알과

그의 손에 흰 두부가

같은 부피의 심장으로 몸 밖에서 창백하게 떨던,

밥처럼 우리가 씹었던 그것들


어디서 떨어진 조각들일까

각기 다른 맥박소리를 내던 알약들

두부 한 모를 털어 넣은 그가

뚝뚝 손가락을 꺾었다

내 명함 좀 보이소

[대리 우장춘]

형님 밑에서 일 년 만에 대리되었소


보소, 아지매요

바다만 바라보면 미친다카이


버려진 신문에

안개가 지독한 한강 사진이 실렸다

뚜벅뚜벅 안갯속에서 걸어 나온 그 사람은

활자들 사이를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다시 뿌연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아지매요 서울에서 왔소?

올해 서울은 눈이 많이 왔지예?

가시나랑 서울 눈을 한번 밟아 보려 했는데,

가시나들이란


우대리는 모래 위에 여자를 그렸다

가슴은 풍만하지만 깃털이 없는,

보소 아지매요, 이쁘지예

내 여자라예


삼켰던 것들이 숨통을 만들었다

눈가의 몇 가닥 깃털을 돋아나게 하고

부패한 속을 잠재우고 있었다

나는 좀 더 차가워야 해

이미 떨어져 나온 조각은 다른 섬이란 것을 말해야겠어

안개 탓이었다

우대리의 명함들이

하얗고 가벼운 깃털로 날린다

구겨진 신문은 바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벼운 것은 결코 길을 밟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했다


보소 아지매요

가입시더

쎄고쎈게 가시나 아입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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