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횡단보도 앞에서 급정거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무언가에게 쫓기듯 초초했던 날이다.
남자가 아니 남자인듯한 그는 불빛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냥 허공을 보듯 몇 초 아니 몇 분 그냥 그렇게 나를 보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다시 걷던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그리고 몇 분 아니 몇 초(?) 뒤에 요란하게 급정거하는 차바퀴 긁히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공중으로 날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분 아니 몇 초. 모든 공기와 세상이 멈추었다. 내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 악세레다를 밟았을 때였다.
몇 분간의 의식의 흐름을 꼼꼼하게 진술해 본다. 내가 급정거하고 그가 나를 바라보았던 그 순간은 내가 가기 위한, 그가 가기 위한 찰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는 지금 어디쯤으로 이동했을까. 깊게 호흡을 하고 신고 전화 버튼을 눌렀다.
그 찰나만큼의 시간 동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라, 가던 길로 가라. 남자는 돌아섰었다.
공중으로 돌아섰던 남자의 등에서 뿜어져 나왔던 소리도 "그냥 가라"였다.
가라, 그냥 가라, 너는 내가 아니다.
전생 그 어디서부터 끝없는 되돌이표로 있는 말.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밤 11시 하고 몇 분이 더 지났는지 모른다. 신고를 하면서 시간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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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만에 구독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다.
계속 날아드는 알림. 자꾸 미뤄지는 글 읽기. 동의할 수 없지만 눌러야 하는 라이킷.
그래서 구독에 더 인색했었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참으로 오만한 자의 오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알리고, 단지 그것뿐인 브런치에서 굳이 숫자를 맞추면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면
가라, 가던 길로 가라.
나는 내려놓겠다. 힘들어서 죽겠다.
그 힘들어 죽겠는 구독을 나에게 한 표 던지는 당신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므로 나는 더욱 낮아지겠다. 당신보다 더 많이 구독하겠다. 더 많이 라이킷을 하겠다.
읽지 않고도 가볍게 라이킷을 하여 가볍게 당신과 어깨동무를 해야겠다.
어느 날은 깊게 눈을 맞추는 날도 있을 것이다.
주름진 내 이마에 박힌 그의 눈빛을 지워 줄 운명적인 만남도 있을 것이다.
글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그러니 가라. 가던 길로 가라.
당신은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