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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Nov 23. 2024

secret 어린 왕자 19

그대의 목소리를 믿어 봐

K


아저씨의 슬픈 표정을 볼 때,

어린 왕자와 바위산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아.

바위산은 척박하고 단단했으며

한그루의 나무도, 한 포기의 풀도 없이

그저 경쟁적으로 바위만 뾰족뾰족 높게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는 거야.

바위산에 사는 메아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는데,

어린 왕자의 말만 흉내 내고 있었다는 거야.

도저히 대화라는 걸 할 수 없었던 거지.



아저씨가 말하길

바위산은 더 높이 오르기만을 원하는

고립된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거야.

더구나 메아리처럼

자기의 정체성은 드러내지 않고 남의 말만 따라 하면서

종종 타인의 말꼬리를 잡거나 비판만 일삼는 무리들과 같다는 거야.

비겁하게 익명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존재들 말이야.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언젠가 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싶어서 독서실에 간 적이 있었어.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보았지.

노란 메모지에

<가 졸고 있는 간에 나의 경쟁자는 참고서를 넘기고 있다.>라고 쓰여있었어.

함께 재잘거려야 할 친구가

함께 꽃을 가꾸어야 할 친구가

오히려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어 뾰족뾰족 바위산을 올리고 있었던 거지.

서로는 메아리처럼

내가 하는 말이 내 귀로 돌아올 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어.

아이들 잘못이 아니야.

지구라는 별이 모두를 경쟁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마음이 아파서

바위산에 오르던 어린 왕자처럼 한동안 멈추어 있었어.



K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야 해.”라고 아저씨가 말했어.

진정한 자신은 경쟁 관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대.

관계는 소통을 전제로 하고

소통에는 이해와 책임감이 필요하다면서

아저씨는 바람에 흔들리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주었지.


나는 그대의 목소리에 그대 자신을 담고 있다는 것을 믿어.

나는 그대의 발걸음을 믿어.

그대의 발걸음에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secret이 숨어있다는 것도 믿어.


초원으로 걷는 길은 뾰족뾰족 바위산이 아니고

늘 배우고 성장하는 여정이 될 거야.

그대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

그대의 여정을 위해

나는 늘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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