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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07. 2023

자발적 경력단절여성이 되기로 했다.

결혼 직후 경단녀가 되기로 한 이유

20대에 꿈꿨던 30대의 내 모습은 이랬다.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힐에 각 잡힌 정장을 입고 한쪽 어깨엔 고급 핸드백을 멘 채, 으리으리한 빌딩을 매일 자랑스럽게 통과하는 커리어우먼. 어릴 적 유행했던 '골드미스 다이어리'라는 드라마의 세 주인공처럼 결혼보단 내로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런 멋진 모습을 꿈꿨던 내가 30대 초입에서 자발적 경력단절여성(이하 경단녀)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결혼 직후에 말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 (C. Pixabay)

자발적 경단녀가 되기로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이를 가지고 나서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어서다. 나와 남편은 아직 아기는 없지만 자녀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아이와 함께 어떻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지 고심하게 된다. 얼마 전 출산한 친구는 유아발달학적으로 한 사람의 성격은 3살에 거의 완성된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그때까지 아이와 부모가 어떤 애착관계를 가지는지는 정말 중요하다고 알려줬다. 그 친구는 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영유아 시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데다, 평생 가는 성격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1년간 육아 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어렵게 이직한 대기업을 그만뒀다. 그녀는 너무 행복한 얼굴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가 나를 필요할 때 곁에 있고 싶고, 시간의 자유를 확보하고 싶은데 회사에 다니면서 이를 지키는 건 너무 어려운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노동 환경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더욱이 어렵다.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기도 어렵고, 유럽의 새로운 기준이 된 재택근무를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회사는 많지 않다. 게다가 아이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쉽사리 맞벌이를 포기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주변에 출산을 준비하거나, 이미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짧게는 6개월 길면 1년 육아 휴직을 한다. 친구들은 큰 기업에 다니더라도 인력이 부족하기에 아직 1년씩 육아 휴직을 하기엔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육아 휴직을 길게 하더라도 커리어 고민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유 의지를 지닌 우리에게 노동 환경의 유연성, 업무의 자유도 그리고 일을 통한 자아 실현은 평생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고민거리다. 국내 한 대기업의 7년 차 과장인 친구는 아이를 낳고 보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단다.

'어렵사리 승진하고 육아휴직 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집에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 근데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회사를 나오면 어떤 일에 전문성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가끔 눈물이 나. 나는 회사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언니는 언니 이름으로 책도 내고 글도 쓰잖아. 언니 책이 도착했을 때 기쁜 마음이 더 컸지만, 친구는 책도 냈는데 난 뭘 하고 있나 하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나오더라ㅎㅎ'


주변을 제하고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인 나인데도, 친구는  출간 소식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친구가 내뱉는 깊은 한숨에 함부로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그 고민의 깊이와 무게를 함부로 측정하는 게 될까 봐. 그와 동시에 그녀의 고민은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내 고민이 되어 마음속에 콕 박혔다.'근무 환경의 문제일까? 시간의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회사를 다니고 싶을까?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의 것을 만들고 싶은 존재일까?'. 이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실은 부모에겐 아이와 보내는 1분 1초가 소중하다는 것이리라.


자발적 경단녀가 되기로 한 두 번째 이유는 인생의 필연성 때문이다. 그 필연성은 우리 부부의 환경적인 요인과 타고난 내 성향과 관련 있다. 국제 커플인 우리 부부는 언제 어디에 정착할지 모르는 데다, 나라는 사람은 안정적인 회사 생활 보다 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왜 회사 생활에 뜻을 두지 못하는 걸까?', '독립하기엔 사회 경험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등 안 되는 이유만 찾기 바빴으니까.


어딘가에 속해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내적 욕구와, 직접 이것저것 부딪히며 내 것을 만들어 가고 싶은 내적 욕구가 매번 부딪히다 보니 회사에 들어갔다, 퇴사 후 나만의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내 이력서는 난잡하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서른 살에 첫 취업해 약 8개월씩 두 번의 공백 기간이 있고, 한 곳에서 약 1년 반 씩 근무를 했다. 공백 기간에는 혼자서 내 것을 해보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애처롭고 서툰 발버둥이 나비의 힘찬 날갯짓이 되도록 더 도전하고 버티지 못했다. 월급이 없는 불안한 현재와, 결혼을 앞두고 일정한 수입도 없는 내 모습이 초라했으니까. 그렇게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나를 바꾸려 하기보다 인정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나는 안정적인 회사 생활보다는 모험을 즐길 때 즐거운 사람이고, 불확실하더라도 주체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환경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고맙게도 남편은 이런 나를 지지해 주기까지 하니, 자발적 경단녀가 되는 결심에 불이 붙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것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자발적 경력 단절 시간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시간임을 나는 믿는다. 자발적 경력 단절을 자발적 경력 발전으로 만들 수 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을 80%의 설렘과 20%의 긴장감으로 꽉꽉 채우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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