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5년 정도의 회사 생활 중 나는 퇴사를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수습 기간을 끝내고 정규직을 앞두고 있던 때, 한 번은 1년 8개월 정도 회사를 다닌 후. 첫 번째 이유는 조직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퇴사 후 나만의 것을 꼭 만들어 내고 싶어서였다. 아쉽게도 두 번째 퇴사 후 8개월 만에 조직으로 돌아가기로 했지만 말이다. 결혼을 앞두고 일정한 수입이 없는 내 모습이 시댁 앞에 초라했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일 세 번째 퇴사를 한다. 그리고 처음과 두 번째 퇴사할 때와 달리, 세 번째 퇴사는 심사숙고 후 준비 운동까지 마쳤다.
퇴사 전 준비 운동이라니?
퇴사에 단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퇴사를 할 땐 회사 밖에서 혼자서도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다. 회사 밖에서도 무엇이든 그저 열심히 하다 보면 어떠한 성과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패기. 하지만 세 번째 퇴사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자 노력했다.방점은 '노력'했다는 것. 여전히 답은 찾고 있는 중이지만. 올해 결혼을 하면서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기에 마음대로 퇴사를 저지를 수도 없었고,회사가 나와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퇴사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감정적인 결정이거나 회피에 불과하니까.
세 번째 퇴사를 앞두고 가장 용기를 낸 일은 나를 '인정'하는 일이다.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내 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는 불안정함이 크더라도 삶의 불확실한 성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큰 명예는 가지지 못했더라도 어디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기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난날의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불안하다는 이유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배우길 원했고, 내가 바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시기만 했다.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 성공을 만들기까지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돌파했을까?
알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었으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갈 리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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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know yourself,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뻔한 클리셰가아니라 정말 용기 있는 말이다. 우리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살면서 내가 믿는 바를 좇는다는 것은 연어가 새끼를 낳기 위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이 흐르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거슬러 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모두가 다 이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 여정을 택해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나라는 사람에 조금은 가까워진 의미 있는 한 걸음.나의 모자란 부분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다.
한편, 마음 준비 운동과 동시에 '현실 생존 준비 운동'도 했다. 퇴사 결정을 하기 전, 남편과 함께 마주 앉아 우리가 모아 놓은 돈으로 안정적인 월급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해 철저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남편은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에,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모든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즉흥적인 성향에 일단 저지르고 내가 바라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때문에 처음으로 숫자로 나의 생존력을 계산하고, 쫄딱 망하는 경우부터 잘 풀리는 경우까지 다양한 상황에서의 가계 시나리오를 그려보니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적어도 얼마만큼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계산덕에 수입이 없는 현실 앞에 조금 더 뻔뻔해졌다. 돈이 바닥나면 어떤 일이든 하면 입에 풀칠을 하겠다는 자신감과 함께.
마지막 준비 운동은 명확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성과를 내기 위한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3가지 중 제일 어렵다. 더욱이 즉흥적인 성격의 극 P성향의 인간이기에 떠오르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업무부터 사소한 일정까지 스마트워치로 시각을 체크하며 어떤 일을 하는데 드는 시간을 예측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의사결정을 내리려고 연습 중이다. 지난 퇴사 후에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데드라인을 미루다 보니 목표하던 것을 끝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웃풋을 내기까지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고, 하루라는 시간조차 관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결과물을 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분명 성장할 테니까.
'퇴사 후 걱정 되세요? 해맑고 회사에도 미련이 없는 것 같아서요.'
오늘 점심을 함께 먹은 동료가 물었다. 그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일부터 줄어들 통장 무게가걱정되고, 취업 못할까 봐 두려울 때도 있다고. 하지만 그 두려움에 발목 잡혀 지금 내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과 도전을 거부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이걸 인정하기까지 5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퇴사 준비 운동이 퇴사 후 명확한 길을 제시해 준 것도, 일정한 월급을 약속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덕분에 막연한 패기나 뜬구름 잡는 목표만 세우는 대신에, 조금은 더 실질적으로 내 스스로의 능력을 시장에 펼칠 채비가 되었다.
한국에도, 외국에도 정답이 있는 건 아니더군요. 그렇지만 그것이 희망이었던 까닭은 저만의 답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사고의 확장과 마음의 여유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경험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온전히 세상을 마주하고자 매일 벌인 작은 투쟁 덕분에, 제 두 발로 단단히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