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Sep 15. 2022

남편, 나 엄마한테 한 번도 화 안 냈어. 착하지?

명절 때문에 오셨던 남편의 엄마가 열흘 가까이 며느리살이를 하다가 엄마 집으로 가셨다. 예민하고 까칠하면서, 살림은 생산성 없어서 하기 싫다는 며느리를 대신해 며느리 살림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해 주시던 엄마가 가셨다. 그냥 해도 쉽지 않은 큰 집 살림을 (대형견을 포함해서 집에서 개를 세 마리나 키우기까지 한다.)  며느리 입맛에 맞게 해 주시려고 얼마나 애쓰셨을지 아는데, 엄마는 엄마가 해주는 거 좋아하는 며느리라 기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좋기만 할 수 있겠는가. 친정 엄마랑도 열흘을 같이 지냈다면 열 번은 더 싸웠을 텐데, 예민하고 까칠한 며느리가 이번엔 엄마가 저지르는(?) 사건 사고에도 큰 소리를 내지 않은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안쓰러워. 젊을 때 일만 하느라 놀러 가 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해서...... 엄마는 한 번도 즐겨보지 못하고 살아서."

종종 하는 말인데, 이번엔 좀 쓸쓸하게 들렸다.

"난 남편이 더 안됐다! 부모랑 여행을 가보길 했냐, 부모랑 뭘 해본 게 있냐?"

"나는 괜찮아.  그때는 형편이 어려웠고 상황이 그랬던 거니까."


엄마와 커피를 마시며 남편의 말을 전해주었다. 내가 엄마를 괴롭힌다고 생각해서인지 자꾸 저런 말을 한다는 농담과 함께.

이런 걸 모전자전이라고 하는지, 엄마도 남편과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괜찮아.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데 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아들한테는 해준 게 없으니까 미안하지. "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 애틋한데 왜 남편과 남편의 엄마는 나만 빠지면 서로 그토록 어색한 사이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말입니다. 나한테 말고, 아들은 엄마한테, 엄마는 아들한테 직접 그 애틋함을 표현하란 말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엄마가 화장실 하수구에 하수구 냄새 방지 트랩을 빠뜨렸을 때도 꾹 참았고, 친구가 보내준 프리미엄 한우 선물세트를 냉동실에 넣어 놨을 때도 (심지어 좋은 고기라 냉동시키지 않고 바로 저녁에 먹자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ㅠㅠ) 엄마에게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당황스러웠나?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냐, 내가 이렇게 잘못했는데 왜 뭐라고 안 해. 화가 잔뜩 날 일인데 그냥 화라도 내. 그래야 마음이 풀리지 않겠어?"

남편은 이 얘기를 듣고 그동안 엄마한테 얼마나 화를 냈길래 엄마가 차라리 화를 내라고 하는 거냐며 웃었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 엄마한테 한 번도 화 안 냈어. 착하지?"

남편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얼굴을 잡고는 마구마구 흔들어댔다.

"그래, 착하다 착해! 아주 착하다!"




엄마가, 아이가 학교에 가 있을 때 집에 가셨기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오면서 할머니 가셨다는 소식을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벌써? 더 있다가 가시지......"

아이 말투에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있다.

"열흘이나 있다 가셨잖아. 할머니도 힘드셨을 테니 할머니 공간으로 돌아가서 좋으실 거야. 왜? 아쉬워? 할머니랑 같이 지내서 좋았어? 뭐가 그렇게 좋았어?"

"그냥......"

말끝을 흐리는 아이에게 답을 재촉했다.

"할머니가 맨날 예쁘다고 해 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칭찬 많이 해줘서 좋았어?"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그렇단다.

왜 안 좋겠는가. 혼자 알아서 하라는 부모와 달리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따라다니며 예뻐해 주며 신경 써주는 할머니가 좋았겠지. 뭐든 지맘대로 하겠다는 사춘기 아이도 이런 걸 보면 아직도 한참 아기 같기만 하다.

"할머니한테 전화해봐. 할머니랑 있어서 좋았다고 말씀도 드리고, 또 빨리 오시라고 해~"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아이의 아쉬움이 엄마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루의 자태가 막장며느리인 내 모습 같구만! ㅠㅠ



이전 03화 복 받은 자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