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친정엄마가 상견례 자리에서 내 성격이 얼마나 지랄 맞은 지, 마지막 기회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에도 "우리 공주가 얼마나 착한데요!"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공주라 불러주고 잘해주시는 것에는 변함없지만, 결혼 한 이후 몇 가지 사태들로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는 여러 번의 파도타기를 해왔다.
처음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것은 혼수 때문이었다.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시가는 어머님도 아버님과 같이 일을 하셨기 때문에 바쁘다고 하셨다. 그래서 화장품, 가방, 옷 같은 것들을 사라며 카드를 덜컥 내주신 것이다.
박사 논문 쓰느라 정신없는 딸이 방해되지 않게, 가구점이며 예단 집 등을 미리미리 알아두고 함께 다니면서 손수 골라준 친정엄마와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이지만, 뭐 어쨌든 바쁘다니까 수긍했다. 사실 친정엄마랑만 다니는 게 훨씬 편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카드의 한도였다. 어느 정도로 예산을 잡고 쓰라 하신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데다가 장사하느라 엄마도 바쁜 신랑네가 부자 일리 없다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남들 한다는 대로 명품 화장품이며 명품 가방, 명품 옷을 사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공부만 해서였을까. 장사하는 집이 오히려 현금부자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사는 집이 아닌 건 분명했다), 못 사는 집 남자와 결혼하면서 내가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니 얼마나 어리고 순진했던 건지...
나는 명품을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가,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 친정엄마가 사다 준 가방이 몇 개 있으니 낭비하지 말자는 친정엄마의 말씀대로 그냥 편하게 들고 다닐 중저가 가방, 그냥 막 쓸 화장품, 그냥 막 입고 다닐 수 있는 옷 두 벌을 골랐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시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시어머니 화장대를 보게 되었는데, 아! 우리 시어머니는 방판 화장품에 미용기기까지 세뚜 세뚜로 구비해서 쓰고 있었다!
이런 걸 쓸 수 있는 시어머니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나도 좀 더 고급 라인의 화장품을 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