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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Sep 06. 2022

복 받은 자식

명절을 앞두고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태풍이 오기 전에 서둘러 오시겠다고 연락하셨을 때 아이의 행사 때문에 아침 일찍 나왔던 터라 난장판인 집에 엄마 혼자 집에 계셔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쌓아둔 빨래를 돌려놓고, 며느리가 사춘기 아이와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방치해둔 아이방부터 청소를 하고 계셨다. 엄마가 오시자, 온 집안이 반짝반짝 윤이 난다.


다음 날, 아들과 손녀가 나가고 며느리가 운동을 시작하자 엄마가 말씀하신다.

"네가 운동하니까 참 좋다. 운동을 해서 네가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구나."

"운동하니까 움직임이 가벼워지긴 했는데, 운동한다고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문제야."

"다른 거 아무것도 못하면 어때. 다른 거 못하더라도 운동은 계속해. 그래야 좋아."


며느리 운동 끝나면 밥 먹이시겠다고 식사 준비를 하시는 엄마는 간장게장부터 손질을 하신다. 며느리가 먹고 싶다고 전화하자 지난주에 택배로 부쳐주셨던 건데, 귀차니즘 만렙인 며느리 먹기 편하라고 날카로운 부분을 가위로 다 제거하고 한입에 쏙쏙 살만 발라 먹을 수 있게 해 주신다.

식사를 위해 친정엄마가 만들어 준 반찬을 꺼내자, 엄마가 이렇게 다 해주신 거냐며 우리가 복 받은 자식들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신다.

며느리가 끓여둔 찌개를 드시겠다던 엄마는 찌개 속 꽃게를 며느리에게 건네신다.

"귀찮아서 안 먹을래. 게 만지고 나면 아무리 씻어도 하루 종일 손에서 게 냄새나는 거 같아."

며느리의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엄마는 얼른 가위를 가져와서는 게살만 발라 며느리 앞접시에 놔주신다. 

"엄마, 잠깐 있어봐! 엄마가 게살 발라주는 거 사진 좀 찍게!"

게살을 다 바르고 돌아서려던 엄마는 웃으시며 다 발라진 게살을 계속 긁어주신다. 하하하

아! 남편이랑 결혼해서 이렇게 좋은 엄마가 생겼으니 나는 복 받은 자식임에 틀림없다. 


게살 발라주는 엄마가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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