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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Feb 01. 2022

장손 며느리인 나는 막장 며느리입니다.

장손 며느리가 명절을 보내는 방법

“나 죽으면 절대 내 제사는 지내지 마”

“엄마 제사만 안 지내면 무슨 소용이야?”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면 지내지 마.”

“엄마가 작은 아버지한테 잘 말씀드리고 정리한 다음에 가.”     


이번 설 명절에 시어머니와 내가 나눈 대화이다. 모녀의 대화만큼 편한 듯 보이지만, 사실 편한 건 나뿐이다.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걸 질색하시는 분이고, 난 나 귀찮은 거라면 질색팔색 하니, 시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시작부터 시어머니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지랄 맞은 성격을 워낙 잘 아는 우리 엄마는 딸 셋 중 유일하게 나에게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말을 해왔었던 터라, 상견례 자리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결혼에 대해 잘 생각해 보라고, A/S는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우리 공주(=나)가 얼마나 천사 같은지 아냐며 엄마의 말을 웃음으로 넘기셨다.     


이제 와서 내 남편이 우리 엄마에게 왜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냐고 항의하면 친정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말렸으면 최선을 다한 거 아니냐?”라고 항변하고, 내 남편은 “이 정도인지는 몰랐잖아요!”라고 울부짖는다.     




난 장손 며느리이다. 

장손 며느리라서 명절 때 남편 집에서 보내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시되는 분위기였지만, 친정은 딸만 셋이고, 딸들이 다 출가한 명절을 부모님 두 분이 외롭게 보내는 게 싫어서 결혼 전부터 나는 친정에서 명절 차례 지낼 때 빠질 수 없다고, 날 보내주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 댁에서는 이런 상황을 기꺼이는 아니었겠지만, 새벽 일찍 시댁 차례를 지내고, 친정집에 가서 2차로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난 시댁 차례가 끝나면 밥 한 끼도 먹지 않고 친정으로 향했다. 

아! 그때  시댁 식구들은 내가 얼마나 싫으셨을까?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셔야 하셔서 제사를 지내는 게 버거우셨던지 절에 제사를 모셨다. 

이 때도 새벽에 일찍 절로 가서 차례를 지내고는, 시댁 식구들과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밥 한 끼 먹지 않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시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작은 아버지가 절에 제사 모시는 게 불편하신가 봐. **(작은 며느리)에게 제사 좀 모셔주면 안 되냐고 하셨다더라. 내가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 다른 절에 모시면 괜찮을까?”

“그럼 그냥 내가 할게! 근데, 음식 준비까지는 내가 못하니까, 맛있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주는데서 사다 할게!”     

나한테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대답이 나왔나? 다들 놀라워했지만,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다시 절에 모시자니, 절에 모시기 싫어 말씀하신 작은 아버지나, 시어머니 마음이 불편할 게 뻔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좀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작은 아버지 말씀대로 남편 동생네서 제사를 모시게 되면, 남편이 그 제사에 참석한 단 몇 시간이라도 얼마나 불편하고 눈치가 보일까, 내 남편 그런 눈치는 보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뿐이었다.      


물론 제사를 모셔오고 나서 친정집 차례에 참석하기는 어려워졌지만, 다행히 친정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제부의 본가에서는 자정에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동생네가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었기에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동생과 제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다들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렇게 우리 집으로 제사를 모셔왔고, 우리 집에서 지낸 첫제사 때 작은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면서 나한테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맛있는데서 잘 사 왔네. 잘했다. 고맙다.”     


지금은 시어머님이 일을 그만두신 상태라, 제사 지내기 며칠 전에 우리 집으로 오신다.

오시기 전에 전화로 당부하신다.

“엄마가 가서 다 해줄 테니까, 빨래며 청소며 하기 싫은 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착한 며느리는 시어머님 말씀에 복종하여 설거지도 산더미로 쌓아놓고 시어머님을 기다린다.

장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맛을 평가하거나, 제자리에 물건을 두지 않았다는 등의 잔소리를 보태거나, 때로는 시어머니의 아들을 꾸짖기도 하면서 명절을 보낸다. 

이런 역경을 견뎌내기 위한 시어머니의 방법은 이어폰을 끼고 안 들리는 척하시는 거다.      




매년 명절이면 명절증후군과 관련된 뉴스들이 나온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하는데, 대부분 주부가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시어머니도 나 때문에 명절증후군을 겪는 건 아닐까?     


“엄마! 나도 엄마한테 화나는 거 있으면 다 얘기하는 것처럼, 엄마도 불편한 거 있으면 다 말해.”

“난 불편한 거 없어. 내가 불편할 게 뭐가 있어? 나는 우리 며느리가 아주 합리적이라서 좋아. 내가 수틀리는 짓만 안 하면 되거든.”

“아! 엄마! 지금 나를 돌려 까는 거야?”

내가 항변하자, 시어머니랑 남편이 깔깔 웃으며 난리가 났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구성원 간 요구되는 역할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딸만 셋인 친정은 사위들이 본가보다는 처가에 머무는 시간들이 훨씬 많고, 사위들 모두 장모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아들 없는 집의 아들 역할을 한다. 

웃긴 건, 이 사위들이 막상 본가에 가서는 처가에서와는 다르게 데면데면한 손님처럼 지내다 온다는 것이다. 

그럼 며느리들이라도 살갑게 딸 노릇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못한 것 같으니,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가 안쓰러워질 따름이다. 

“엄마, 내가 이제 살살 소리 지를게요!”          


남편이 이 글을 보고는 걱정이 많다.

“너 사회적 지탄받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너무 이렇게 솔직히 쓰지 말고 너를 좀 포장해서 써.”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니……. 남편아, 너도 나를 돌려 까는 거니?




시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 상. 코로나로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설날이니 떡국은 먹어야 한다고 끓여주신 떡국.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묵, 잡채, 생선전.




연관 글: https://brunch.co.kr/@jinykoya/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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