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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pr 19. 2022

너는 이제 내 자식이다!

제사를 앞두고 시어머니가 오셨다.

집에 오시자마자 2층 엄마 방에 짐도 가져다 둘 시간이 없어 계단에 내려놓고는 며느리의 브런치 글에서 본 집의 변화를 확인하러 마당 구석구석 다니시며, 며느리 글을 잘 읽었다는 티를 내신다.

"딸기는 여기 이렇게 심은 거야? 잘했네."

"가림막을 이렇게 설치한 거구나, 호호호"

"저게 네 이모님이구나? 호호호, 청소를 진짜 잘해놓으셨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며느리 좋아하는 잡채며, 식혜며, 오이무침을 하시겠다고 재료를 꺼내신다.

"커피 한잔 마시고 해, 뭐가 그렇게 바빠."

"너 좋아하는 것 좀 해줄라고 그러지."

"천천히 해!"


재료를 준비하시자마자, 청소 도구를 들고는 2층으로 향하신 엄마는 한참을 내려오지 못하고 청소를 하신다. 2층은 사춘기 딸아이 혼자 사용하면서 내가 치워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면 치우는 속도가 어지럽히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난장판이 되어 있기 일쑤였다.

치우고 치워도 매번 난장판을 만들어놓는 딸아이에게 화가 난 나는 "2층은 너 혼자 쓰고 있으니 네가 청소하고 살아!"라는 경고를 날리고, 그 이후 2층에 올라가 보지 않은지 2주가 넘은 상태였기에 상상만으로도 상태가 어떨지는 짐작이 되었다.


쓰레기나 옷더미를 구석구석 박아둔 손녀의 방을 치우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살짝 말을 걸어본다.

"A 방, 장난 아니게 더럽지? 치운 거 보여줘야 용돈 받는데 치우기 싫으니까 다 처박아뒀을 거야."

"애들이 다 그렇지, A한테도 너무 더러우면 치우기 힘드니까, 조금씩 치우라고 했어. 그렇다고 너는 스트레스받을 거 없어. 넌 2층에 올라가지도 말고 그냥 보지 말고 살아. 내가 또 한 번씩 이렇게 치우면 되니까."


2층 구석구석 치우느라 그렇게 고생한 엄마는 1층에 내려오자마자 또 준비해둔 재료로 음식을 만드느라 종종거리면서도 며느리 밥을 챙기신다.

"배고프지? 너 배고플까 봐 밥 조금 해놨으니까 좋아하는 오이 무침이랑 먹어."

"지금은 배 안 고파, 괜찮아"

"배고플까 봐 먹으라고 해놨는데, 따뜻할 때 좀 먹지."

"지금은 싫어"


이래 놓고 저녁때가 되어 배가 고파진 며느리는 엄마에게 징징거린다.

"며느리 배고픈데, 아들 올 때까지 밥 안 주는 거야?"

"너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내가 밥해놨다고 먹으라니까 네가 싫다 했잖냐."

"그건 그때지! 봐봐, 아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분명해!"

이때다 싶은 며느리는 엄마를 놀리느라 엄마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오빠야, 엄마가 오빠 너 올 때까지 밥 안 줄라나보다. 나 배고파 쓰러지기 전에 얼른 집에 오너라!"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엄마 아들도 엄마 놀리는데 한몫한다

"엄마, 아들 올 때까지 며느리 밥 안 주고 있었어?"

"그러게. 내가 너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이젠 아들 며느리 협공도 다 받아치는 엄마의 내공이 엄청나다.

아들이 말한다.

"아들 왔으니까, 이제 며느리 밥 줘."




엄마랑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마트에 같이 갔다.

아들이랑 둘이서만 장 보러 간 적은 있어도 일한다고 바빴던 며느리랑 둘이 장 보는 건 결혼 18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 나 혼자 와도 되는데......"

며느리가 해주는 일이라고는 엄마를 차로 모시고 마트에 가는 것, 엄마가 찾는 물건을 좀 더 빠르게 찾는 것, 오고 가며 얘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는데도 엄마는 며느리를 끌고 온 게 미안한 건지 "혼자 와도 되는데...."라는 말씀을 자꾸만 하신다.

"너랑 장 보니까  아주 빨리 끝나고 좋다. 나 혼자 왔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서 오래 걸렸을 텐데......"

익숙하지 않은 마트에서 장을 보면 당연히 누구라도 헤매고 오래 걸릴 일인데, 엄마는 내가 마트에 따라와 줬다고, 내 덕에 장을 빨리 본거라고 괜한 공치사를 해주신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왜 벌써 가?"

"가야지, 여기서 뭐해?

"가지 마, 3일 뒤에 아들 생일인데 미역국 끓여주고 가!"

"며느리 생일도 못 챙겨주면서 아들 생일 미역국 끓이면 네가 또 그렇게 말할 거잖아. 아들 생일만 챙긴다고."

"그러니까! 나 그 말하게 가지 말고, 미역국 끓여주고 아들 생일 챙기라고. 나 그 말하게 해 줘!"

며느리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말에 엄마가 크게 웃더니, 퇴근해 돌아온 아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내일 일찍 가려고 했더니, 공주가 가지 말고 아들 생일 미역국 끓여주라고 하더라. 호호호. 그래서 내가 내일 안 가고 아들 생일 밥 사주고 가려고. 며느리 생일도 안 챙기면서 아들 생일 챙긴다고 뭐라고 할까 봐 그냥 간다고 했더니, 그 말하게 해달라고 가지 말란다. 호호호"

엄마는 아들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도 몇 번이나 웃으신다.


시장을 보고 돌아온 며느리는 장 보느라 피곤했다며 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눕는다

엄마는 제사음식은 조금씩만 할 거라 금방 한다면서, 며느리 배고프겠다며 김치전을 얼른 부쳐주신다.

누워 있는 며느리 깨우는 것도 조심스러운 엄마는 '이거 다했는데 지금 따뜻할 때 먹으면 좋겠는데......'라고 혼잣말처럼 얘기하신다

전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는 걸 아는 며느리는 다른 때 같지 않게 냉콤 일어나 김치전에 달려든다.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학원에 다녀오는 동안, 엄마는 제사 음식 준비를 혼자 다 해두셨다. 

이제 작은 아버지랑 작은 엄마 등 제사 참석자들이 오실 때까지 엄마가 해둔 음식을 맛보면서 수다나 떨면 된다.

남편이랑 장난치느라 "나 반품하고 싶냐?"라고 말하자, 엄마가 정색하며 끼어드신다.

"무슨 반품이야! 그런 말은 하지도 마라! 너는 이제 내 자식인데!"


제사가 끝나고 작은 아버지가 가시면서 슬그머니 봉투를 주시자,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건 왜 네가 받냐?"

"아, 작은 아버지! 다른 사람들 다 보는데서 용돈을 주시면 어떡해요! 다음번엔 아무도 모르게 줘요!"

우리들의 농담에 엄마는 또 정색을 하며 말씀하신다.

"공주가 왜 아무것도 안했냐, 장보고 이거 다 공주가 준비한 거지!"

며느리 체면 깎일까 봐 얼른 말씀하셨지만, 딱히 한 게 없으니 엄마가 기껏 생각해 낸 며느리가 한 일은  '장보고 이거 다'이다. 인정! 장 보러 따라간 것 말고는 한 거 없다는 거 며느리도 인정!


이번 제사에도 남편이 나를 보며 말한다.

"장손 며느리 그까짓 거 대충 아무 데나 누워있다가 시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나 먹으면 되는 거, 뭐 어렵냐?"

안 어렵지, 암요 안 어렵고 말고요!!!





        


연관 글: https://brunch.co.kr/@jinykoy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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