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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pr 22. 2022

고부사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II)

시어머니의 전화를 피하게 된 건 부동산 때문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로 직장을 잡으면서 서울 근교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시어머니가 재개발로 대박 날 빌라가 하나 있다면서 그걸 사야 한다고 하셨다.

살던 집을 팔고 그동안 벌어둔 돈을 끌어모아도 서울도 아닌 근교 전세로 이사할 돈밖에 없는데,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 빌라를 사라는 건지. 그걸 안사면 크게 후회할 것처럼 난리가 나서 우선 그 빌라를 전세 껴서 사게 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슨 수로 이사를 하지? 당장 나는 어디에서 살지?


서울로 이사할 돈도 없었지만, 남편 직장과의 거리를 고려해서 남양주에 전세를 구하긴 했는데, 우리 모아둔 돈은 시어머니가 물어온 재개발 빌라를 샀으니, 살던 집을 급하게 팔아도 돈이 1억이 부족했다.

남편도 직장생활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런 큰돈을 대출받을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 찬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살던 집이 팔리기 전까지 나는 생애 처음으로 고시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결혼 전, 대학원을 다닐때도 작은 평수이긴 해도 내 소유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중형차를 타고 다녔는데......고시원에서 산다는 건 꿈에서도 상상 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여성전용 고시원이고, 내 방안에 샤워시설이 딸려 있다고는 하지만 원체 예민한 내가 그런 곳에서 잘 지낼 리 만무했고, 남편과도 떨어져 지내게 되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말이다.


당장 들어가서 살 집도 아닌 물건을 당신이 사줄 수도, 돈을 빌려줄 수도 없으면서 왜 사라고 해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건지 원망하면서 하루하루 엉망진창인 날들을 보냈고, 퇴근해서 고시원에 돌아오면  친정엄마와 통화하면서 또 남편과 통화하면서 매일매일 울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다.

나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위가 장모한테 돈을 빌리면 눈치 보일까 봐 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가 돈을 빌려줘서 그 좋은 빌라를 살 수 있었다며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우리 엄마랑 매일 고시원에서 울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래서 전화를 안 받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한테 전화가 오더라도 나의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누기에 상대에게 나의 기분이 전염되지 않도록, 상대가 나로 인해 기분이 처지지 않도록 밝고 상냥한 톤으로 응답할 수 있을 때만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고시원에서 저러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전화를 해오면 애써 밝은 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 번씩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개통을 이유로 최고점에 샀던 우리가 살던 집은, 고시원 생활을 하루라도 빨리 접게 해 주려는 남편의 노력으로 최저점을 찍고 팔게 되어 그 손해만 3천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판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판 금액의 두배가 되었다.

반면, 시어머니의 성화로 사게 된 그 재개발을 앞둔 빌라는 15년이 넘도록 그 가격 그대로이다.

대출받았다고 생각하면 그 이자만으로도 전세 끼고 그 집을 살 정도의 기회비용이 날아갔으니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집은 15년째 같은 사람이 살고 있고, 전셋값이 폭등할 때도 한 번도 세를 올리지 않았다.

15년을 주인 얼굴 한번 못 보고 산 세입자는 마음속으로 자기 집이다 생각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정엄마가 그 집이 진짜 있기는 하냐고 궁금해하는 것처럼, 그 세입자는 집주인이 진짜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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