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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pr 22. 2022

고부사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III)

좀 더 결정적으로 시댁과 거리를 둔 건 제사 때문이었다


딸밖에 없는 집이라 혹시라도 늙은 노인네 둘이서만 적적한 명절을 보내게 될까 봐 남편과 결혼할 때 우리 집 차례에 참석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래서 명절 전날 시가에 가서 명절 준비를 하고 당일날 차례를 지낸 후 바로 우리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첫 명절은 며느리 봤다고 시어머니가 장사하러 가신 동안, 작은 엄마와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낯가림 심한 내가 낯선 시가에서 첫 명절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건 뭐 말 안 해도 뻔한 일이었다.

원래 명절 음식을 하던 집이 아닌데, 며느리 봤다고 그렇게 준비했던 건지 두어 번 그렇게 지내고는 명절 음식을 사다 먹기로 했다.


시집보낸 딸이 명절 음식 준비도 못하는 게 엄마의 치부 같았을까, 아니면 혹시라도 딸이 책 잡힐까 봐 신경 쓰였던 걸까.

친정엄마는 사다 먹지 말고 엄마가 해주는 것을 싸가라고 했다. 어차피 장사하는 시어머니는 집에 안 계시고, 사다 먹으면 돼서 일찍 갈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엄마를 도와서 음식 준비를 하라 하셨다.

지금도 어릴 때도 집안일은 해본 적 없던 터라 사실 친정에서 명절 음식을 준비할 때 나보다는 남편이 훨씬 많은 수고를 했다.  남편은 일머리가 좋아서인지 무슨 일을 해도 친정 부모님 맘에 쏙 들게 해서 시키는 맛이 있었는데, 바쁜 부모님 때문인지 전 조차도 예쁘게 잘 부쳐서, 음식 준비할 때도 내가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동안 남편이 친정엄마를 도왔다. 그래 봐야 손 빠른 친정엄마에게 큰 도움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친정엄마에게도 딸보다는 그나마 나은 사위였을 것이다.


그렇게 친정엄마의 음식으로 명절을 5~6번 보냈을까.

친정 엄마는, 당신 것만 할 때는 약간은 대충 해도 될 것을 딸의 시댁에 보내는 음식인지라 더 신경 써야 했고, 가끔은 빼먹기도 했던 음식이 빠지지 않고 더해지기만 했다.

게다가 명절이 대목인 시댁 어른들 장사 끝내고 돌아와 드시라고  차례 전날 온 가족이 먹을 저녁 음식까지 따로 챙기니, 엄마는 횟수가 더해질수록 더하면 더했지 그 부담이 덜어지지 않았고, 시가에서는 반복되는 횟수만큼 점점 당연하게 여기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대단한 집에 시집을 갔다고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고생해서 명절 음식까지 해다 바쳐야 하나  화가 났다.

맛있게 먹어주는 시댁 식구들이 고마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시가와 친정을 편 가르기 중이었던 나는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즐기던 행위 자체가 우리 엄마의 노고를 당연시 여기는 것만 같아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맛있다는 표현을 농담으로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엄마가 해주는 거 다 받아오라는 시댁 어른의 말씀은 안 그래도 친정엄마한테 미안했던 내 마음에 비수가 되어 박혔고, 결국 그날 밤엔 남편을 공원으로 불러내어 한바탕의 전쟁을 벌였다.

그 뒤로 꼭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시가에 가는 일은 없었다.



오해는 참 쉬운데, 이해와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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