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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띰'이 아닌 테마..

두 번째 이야기..

by 홍실장


Theme: 주제, 테마라는 뜻의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테마'라고 읽는 이 단어의 영어 발음은 번데기 발음이 들어간 '띰'이다.


처음 업계에 들어와서 선배들의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내공을 쌓아갈 무렵,

한 선배가 PT장에 들어가서는, 주제를 설명하려 할 때 이 단어를 '띰'이라고 표현했다.

선배 프레젠테이션의 도우미 역할로서 허리 곧게 펴고 선배의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해서 들어야 했기에 그 순간에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 듣기에 조금은 생소한 단어 '띰'에 난 약간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나도 이제는 제법 내공이 쌓여 선배와 각기 다른 길에서 각개전투를 하게 되었고, 한참 동안은 선배의 프레젠테이션을 함께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선배의 PT장에 함께 들어가게 되었는데 선배는 여전히 '띰'이라 발음을 했고(아니, 좀 더 자연스러운 발음이 된 것 같긴 하다.), 난 그동안 쌓인 내공의 도움으로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에 이번엔 주변 청중들을 볼 수 있었다.

큰 소리를 내거나, 큰 동작을 보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변화를 목격하기는 어려웠으나, 대략 10여 명의 청중들 사이에서 1~2명의 미세한 움직임은 포착 가능했다.

뭔가 살짝 어색한 그 미세한 움직임..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다 보면 영어단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초, 중, 고 12년 동안 기본적으로 배운 영어단어뿐 만 아니라,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더 많이 확장된 수천, 수만의 영어단어를 쓰게 되는데, 대부분 '너도 알고' '나도 알고있는'단어를 발음하다 보니 큰 문제는 없으나, 가끔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면서 그 섬나라 사람들의 구강구조상 나오기 힘들어

약간은 이상하게 국내로 넘어온 몇몇 단어들은 늘 고민이 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다음에야 별로 중요치 않은 일로 차치해 버릴수도 있으나, 자칫 잘못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묘한 분위기와 어색함에 맞딱드리고 만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된장찌게 냄새 진한 조선발음을 할지,

아니면 버터 가득 뿌린 끈적끈적한 미국식 영어를 최대한 비슷하게 발음할지에 대한 고민은 별것 아닌것 같아도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은 어쩌면 아주 심플하다.

프레젠테이션은 청중들을 위한 자리이기에, 그들이 사용하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발음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갑'이라 불리는 저 사람들 앞에서 비록 프레젠테이션을 '을'의 위치에서 할지 언정 극 존칭을 사용하며 바른 자세, 바른태도로 서 있어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생각이 되는 걸까? 솔직히 본인도 발음하기 힘든 원어 발음의 구사를 결정한다.

비단, 몇 영어 발음의 문제는 아니다.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 중에도 우리는 분명 최후 리허설을 할 때 몇몇 막히거나 어색한 페이지를 발견을 함에도, 그 페이지를 생각해낸 아이디어와 그 페이지를 멋지게 만들어낸 파워포인트 기술의 자뻑(?)에 매몰되어, 전체 맥락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 페이지에 면죄부를 준다.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사형선고를 내려야 하는 페이지는 미련 없이 선고해야 한다.

판사의 망치를 세번 땅.땅.땅 과감하게 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준비과정이 수월해지고, 리허설 때도 원활하고 매끄럽게 이뤄진다. 그래야 또 다른 보충설명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파워포인트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정확한 영어 발음이 무엇인지 코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 학원강사가 아닌 이상 우리는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부각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듣기 편한 발음과 그들이 보기 편한 페이지로 매료시킨 뒤에, 내 생각과 우리의 제안을 각인시키면 된다.



그래도 못 버리겠다면, 아니 안 버려진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학원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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