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밝히는 코치가 싫어서 운동을 그만둔 야구 천재 노마크, 언제 어디서나 꼭 밥 먹을 때 조차도 음악을 들어야 소화가 되는 어설픈 락커 딴따라, 전위적인 누드를 즐겨 그리다 정작 자기 인생의 밑그림도 못 그려놓은 기이한 화가 빼인트,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여학생의 무거운 짐을 들어줘도 강도(?)로 오인받는 단순무식형 무대포.
그들이 주유소를 습격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풀어낸 이 코미디 영화는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내 기억에도 누구와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지만, 가끔 명절이면 TV에서 특선으로 해주기도 해서인지 몇 에피소드들은 정확하게 기억을 한다. 특히, 단순 무식형의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유호성의 '무대포'연기는 그 표정과 행동들이 정말 압권이었다.
영화 내내 '난 한놈만 패!' 라며 정말 한 놈만 쫓아다니던 영화 속 '무대포'.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세상 어디에든 그 중요한 '한 놈'은 있다.
맘에 드는 물건을 사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은 것은 구매자라면 당연한 이치이고, 내 이상형의 그녀와 결혼까지 가는 길을 조금이라도 평탄하게 가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 있으며, 사내 미팅에서도 내 기획안이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꼭 설득해야 할 타깃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건값을 깎기 위해 매장의 아르바이트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기도 하며, 그녀의 집에 방문해서는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게 되는 그녀의 동생과 언니를 의식하여 대화를 하고, 팀 내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가 의지하는 옆 동료나 직속 선배에게 은근 무언가를 기대기도 한다.
그 중요한 '한 놈'은 매장의 매니저이고, 그녀의 아버님이며, 우리 회사에 부장님이나 상무님인데 말이다.
우리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전에 담당자를 통해 많은 것을 사전에 확인하고자 문의를 하지만, 담당자가 건네주는 답변은 굉장히 제한적이거나 혹은 아직 미정인 것들이 많다. 최대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를 하지만, 얻지 못한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에게 있어선 리스크일 수밖에 없고, 그 리스크로 인해 오는 불안감은 분명 찜찜하다.
특히나 PT장에 CEO가 참석을 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프레젠테이터에게는 정말 중요한 정보이다. CEO가 아니더라도 부사장이나 구매이사(부장)등의 참석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참석하고 불참함에 따라 프레젠테이션 전략은 수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정보가 부족하면 우린 앉아서 그 리스크를 안아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PT장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프레젠테이션 전에 가볍게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하는 동안이나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위해 노트북과 포인터를 세팅하는 동안, 그 1~2분 남짓한 시간에 우리는 많은 것을 예측하고 알아낼 수 있다. 청중들의 자리배치, 앉아있는 자세, 가볍게 던지고 받는 그들만의 작은 대화들 속에서 대략적인 이곳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특별히 눈치가 100단이거나 관찰력 내공이 10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숙련된 프레젠 테이터는 그 청중들 속에서 의사결정권자. 즉 '한 놈'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예측이 100%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배치된 어떤 공간이든 분명 상석이 존재하고, 그 자리는 대부분 그 주변 자리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이 주어져 있으며, 주변으로 앉아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조금은 편한 자세를 하고 있을 수 있다.
혹은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동안 그들 중 한 명이 정말 감사하게도 '대표님'하고 누군가를 불러 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마음속으로 나마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thank you"
프레젠테이터가 이렇듯 좋은 정보들, 심지어 숟가락으로 떠 먹여주는 것들을 받아먹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프레젠테이션 준비에만 1~2분을 사용한 뒤에 바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게 되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미안한 얘기지만 그 준비가 완벽하다 할지라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경험 많은 프레젠테이터가 프레젠테이션 내내 앉아있는 청중들 한 명 한 명과 동일한 비중으로 아이컨텍을 하며 진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핵심이나 강조를 해야 하는 부분들을 얘기할 때 누구를 쳐다보며 얘기하는지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바로 그 '한 놈'이다. 참고로 나는 프레젠테이션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얘기할 때면 의사결정권자를 찾아 강하게 아이컨텍을 하며 끄덕거림을 유도한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그 주변에서 시선을 맴돌며, 그가 정면을 보았을 때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가벼운 유머로 분위기를 뛰우고자 할 때도 혹시나 그가 불편해하진 않는지 꼭 체크하는 편이다.
이렇게 '한 놈'만 패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규칙이나 규범을 고려해야 하는 매장의 아르바이트생, 그녀의 언니, 그리고 팀의 동료들에게 집중하는 것은 큰 에너지 낭비이며, 에너지 손실이다.
그 에너지들을 모아서 '한 놈'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