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 통지서가 우편으로 왔을 때, 나는 입학식만 손꼽아 기다렸다.
숫자도, 한글도 몰랐지만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달력에 매일 동그라미를 쳤다.
학교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할 때 나쁜 상황은 떠올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은 어린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손꼽아 기다리던 입학식이 지나고,
곧 8세 인생의 큰 두려움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학교까지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살던 나는
한 시간마다 한 대 다니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엄마께서 약 일주일 동안 버스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그 후에는 스스로 차비를 내고, 벨을 눌러야 했다.
버스벨을 너무 일찍 누르면 기사 아저씨께 혼이 났고,
늦게 누르면 정거장을 지나칠 수 있었다.
8세였던 나에게는 입학의 설렘은 사라지고
‘버스를 제대로 타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며칠 동안 연습하며,
함께 내리는 언니·오빠들이 벨을 누르는 순간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창밖 풍경을 기억해 두었다.
저 나무와 저 집이 보이면,
그때 벨을 누르면 된다고 마음속에 규칙을 세웠다.
그제야 기사 아저씨께 정확히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각보다 금세 버스를 혼자 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버스를 타려면 늘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엄마는 조금 일찍 도착하더라도 꼭 이른 버스를 타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이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늘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어디를 가든 늘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낯선 곳을 갈 때는 더 서둘러 출발해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목적지를 향한다.
지난 6월 말, ‘내 마음을 위로하는 독서’라는 주제로
나민애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러 서울시청에 갔다.
나태주 시인의 딸이자 독서의 가치를 전하는 분이기에
꼭 뵙고 싶어 신청한 강연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두 번째로 줄을 섰다.
조금 후 직원분들과 함께 도착하신 나민애 작가님은
일찍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직접 준비한 예쁜 엽서를 선물로 나눠 주셨다.
“제가 직접 사 온 엽서예요.” 따뜻한 말과 함께 건네주시는 순간,
강연을 듣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전해졌다.
강연 중 작가님의 눈물이 가끔 맺혔고,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찍 도착해 가까이에서 작가님을 뵙고,
엽서까지 선물로 받으며,
무엇보다 한 시간 동안 큰 위로를 받은 귀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작은 습관 덕분에,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조금 더 따뜻한 순간들을
일찍 만나고 있다.
강연 시작을 기다리는 복도